[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0] 3부 오름-(19)산방(山房)은 아이누어와 퉁구스어의 혼합 지명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0] 3부 오름-(19)산방(山房)은 아이누어와 퉁구스어의 혼합 지명
산방산 의미는 ‘벼랑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산’
  • 입력 : 2023. 11.28(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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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에 있다. 높이 395m이다. 분화구가 없다. 마치 돔 모양으로 사방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남서 사면 해발 중간 정도 높이 절벽에 길이 10여m, 너비 5m, 높이 5m쯤 되는 동굴이 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

산방산은 방처럼 생긴 굴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문제는 이 산방산이라는 이름이 수상쩍다는 점이다. 이 이름은 '산방+산'인지 '산+방+산'인지조차도 모호하다. '산방+산'의 구조라면 산방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산방이란 '산촌에 있는 집의 방'이다. 좀 고급스럽게 선비들의 서재를 일컬어

절벽에 수많은 풍화혈이 발달했다. 산방굴사는 그중 최대다.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어떤 연구자는 산방을 '산에 있는 방'이라고 하면서, 따라서 산방산은 '산방이라고 하는 절이 있는 산'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산+방+산'의 구조라면 '산에 방이 있는 산'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색한 구조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산방산의 '산방(山房)'은 산수의 굴을 뜻하는 것이다. 산방산 남측면 150m쯤에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산이라 한다'라 설명했다.

1996년도에 편찬한 ‘남제주군의 고유지명’이라는 책에는 '이 산에 방처럼 생긴 굴이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세간에는 거의 100% 이렇게 알고 있는 것 같다.

고전에서도 마찬가지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산방산(山房山)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산방산 남쪽 벼랑에 큰 석굴이 있다라고 나온다. 1653년 ‘탐라지’에도 이렇게 나오고, 1696년 ‘지영록’에도 산방산 중간 정도 높이에 굴이 있는데, 방과 같다라 했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는 '산방'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미루어 산보다 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793년 ‘제주대정정의읍지’라는 책에는 산방산과 굴사(窟寺)를 병기했는데, 역시 굴을 강조한 일면이다.



육당 최남선, 제주도 지명해석에 아이누어 첫 도입


이런 논조들은 '방(房)'이 연상되는 산방산이라는 한자 이름에 이끌린 측면이 강하다. 하필 이 산의 중턱에 굴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산방산이라는 이름은 위에 든 어느 방식의 작명이라고 해도 한자로 기록하고 또 그렇게 발음했다는 점은 공통된다. 과연 제주도에서는 언제부터 한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며, 한자 이전에는 이 산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인가? 그 본래의 이름을 알아야 이 산방산이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뜻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산방굴사.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

이런 원초적 궁금증에 과감하고도 도발적인 풀이를 한 학자가 있었다. 육당 최남선이다. 그는 말년에 친일행위를 하여 아쉬움을 남겼지만, 역사학자, 번역가, 시인 등 다방면에 걸출한 족적을 남겼다. 이런 그가 1938년 ‘제주도의 문화사관’(濟州島의 文化史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는 "옛날부터 선(仙), 불(佛)의 수행자들이 여기에 암자를 짓고 공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것을 뫼 산(山)자, 방 방(房)자 산방을 쓰고서 산에 생긴 방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누어에 비춰보면 산은 비탈이라는 말이고, 방은 '아래'를 뜻하는 '바나' 또는 '바나게'를 음차한 것이다. 그러면 '산방'은 곧 '비탈진 아래에 생긴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는 이 글의 서두에 '학계에 새로운 논제를 제시'한다거나, '신학설의 일단을 소개'한다는 말로 조심스럽고도 최초의 학설임을 강조했다. 물론 지금의 정보로 볼 때 다르게 대입하여 지명해석에 오류를 많이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제주도의 지명을 해명하는데 아이누어를 도입한 것은 뛰어난 식견을 보여 주는 사례다.

제주도의 지명에 나타나는 지명어 '산'에 대해서는 본란을 통해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44회(2023.6.13) 한라산 지명 곳곳에 남아 있는 '산'의 기원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산굼부리, 산지(항), 산지(마을), 산작지왓(선작지왓), 산이동산, 동산이물, 섯산이물 등 그 예가 상당히 많다. 산방의 '산'은 이와 같은 것이다. 산은 아이누어로 '아래로', '비탈', '내리막' '깊은' 등의 뜻이다.



제주도 고대어의 복잡성과 다양성의 사례


산방의 '방(房)'은 무슨 뜻인가? 최남선의 풀이에서 '산'은 제대로 맞췄으나 '방'은 적용을 잘못한 것이다. '방'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은 방(room)이다. 16세기 이래, 변함없이 이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제주 지명에 나타나는 '방'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이다. 정방폭포(正房瀑布)에도 방이 없는데 '방(房)' 자를 썼다. 왜 그랬을까?

정방폭포에서 방이라는 글자는 초기 기록에는 방(方)으로 나온다. 모 방이라는 글자다. 모라는 말은 모서리라고 할 때의 '모'다. 네모라는 뜻도 있다. 두부 한 모, 두 모라고 할 때의 모다. 두부는 네모다. 房(방)이라는 글자는 집을 뜻하는 지게 호(戶)+모 방(方)이다. 집 속의 네모이니 방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문자 생활에서는 方(방)과 함께 房(방)도 모를 나타내기도 한다. 정방폭포에는 네모진 것도 없고 방도 없다. 그런데도 房(방)을 썼다.

정방폭포를 지역에서는 '정모소'라고 한다. 이걸 한자로 쓴다는 게 정방폭포가 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를 쓰려고 한자 모 방(房)을 동원한 것이다. 이 '모'란 퉁구스어로 '물'을 의미한다. 원래의 뜻과는 딴판이다. 이 경우를 훈가자라 한다. 한자를 훈으로 읽되 그 뜻은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이다.

따라서 산방산이란 '벼랑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산'이라는 뜻이다. 아이누어와 퉁구스어가 혼합된 지명이다. 제주도 선주민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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