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면 잠시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전시회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중 서울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WE>(2023.1.31.~7.16., 리움)과 부산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2023.1.26.~4.16., 부산시립미술관)는 대표적인 전시였다. 선정 이유를 들자면 이 두 전시는 오늘 우리들의 민낯을 보여준 전시였다는 것이다. 우선, 마우리치오 카텔란전은 전적 주제와 매체로 미술계에 논쟁과 이슈를 만들어 낸 전시였다. 예술의 중심 개념이 해체된 현대미술의 모호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관심과 열광을 이끌어 내어 모순과 역설의 미술계 현실을 반영한 전시회였다. 한편, 무라카미 다카시전은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모를 보여준 대규모 회고전으로, 팝적인 귀여움과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좀비라는 개념을 뒤섞어 현대인의 불안과 기괴한 심리 그리고 덧없음을 폭로한 전시회였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20세기 시대상을 갈무리한 전시회도 있었다. 서울에서 열린 <김구림>(2023.8.25.~2024.2.12., 국립현대미술관)전이 그것이다. 1950년대 이후에서 오늘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한 실험적 작품 150여점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대규모 회고전이다. 비디오, 설치, 판화, 퍼포먼스, 무용, 연극, 영화,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온 작가의 고독한 열정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넘어 숙연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최근 전 세계의 분위기가 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예전에 파리의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장 앞에서나 볼 수 있었던 줄 서기도 새로운 풍경의 하나다. 전시장 입장을 위해 1시간 이상의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오늘의 청년세대 관객들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전은 무료 전시이지만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었고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하지 않을 경우 1시간 이상 기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지하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왜 예술에 열광하는가? 청년 세대들이 전시장 앞에서 기꺼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전에 없이 달라진 삶의 모습이 보인다.
K-팝의 세계화에 이어 K-아트의 열풍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이 모두를 합쳐 K-컬처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문화가 음악과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영화, 공연, 음식, 복식 등의 문화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단계로 상승세를 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려운 현실적 삶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대이면서도 현세적 삶을 스스로 누리려는 의욕이 상대적으로 커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술계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따져봐야 할 때다. 그 대안의 중심에는 문화 생산과 소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비평의 부활'이라는 생각이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