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서귀포' 걸으면 좋은 거리 지속할 수 있도록[신년기획]

'문화도시 서귀포' 걸으면 좋은 거리 지속할 수 있도록[신년기획]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1)오래된 길에 새로운 바람을
이중섭거리 지정 후 약 30년
미술관 등 인프라 확충 변신
일부 시설 의존… 야간대 취약
솔동산거리 조형물 등 늘어도
자발적 방문객 유인엔 역부족
상권 활력·일자리 연계 방안은
  • 입력 : 2024. 01.02(화) 00:00  수정 : 2024. 01. 04(목) 09:21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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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자그만 전시실 안에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그곳에 걸린 작은 그림들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전쟁이라는 격동기에도 작가는 예술과 가족 사랑을 모태로 창작에 매진했다는 설명문을 꼼꼼히 읽은 그들은 찬찬히 걸음을 옮겨 놓았다.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관광객 등 한 해 평균 27만 명 넘게 방문하는 곳으로 성장한 서귀포의 대표적 공립미술관으로 얼마 전 크리스마스 연휴 시기에도 관람객들이 줄을 잇는 모습이었다.

이중섭거리 옛 서귀포관광극장 방면에서 바라본 모습. 이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도로 건너편에 솔동산 문화의 거리 입구를 알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진선희기자



▶작가의 산책길에서 하영올레까지 단골 걷기 코스=한국전쟁기인 1951년 서귀포에서 약 1년간 살았던 화가 이중섭 거주지 주변 360m 도로를 이중섭거리로 정한 해는 1996년이다. 그보다 앞서 1995년 미술의 해에 이중섭 거주지에 기념 표석을 놓은 일이 계기였다. 서귀포시에서 이중섭거리로 명명한 이래 이중섭미술관 등 그 일원에 지자체가 주도하는 인프라가 확충됐다.

이중섭미술관 인근에는 시각예술 분야 도내외 창작자들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건물이 있다.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입주 작가만 지금까지 100명에 가깝다.

서귀포시에서는 이중섭거리 등 도시 곳곳에 흩어진 예술가의 흔적들을 두 발로 디디는 약 5㎞ 구간의 작가의 산책길도 냈다. 작가의 산책길은 해설사 배치와 함께 종합안내소도 따로 조성되어 있다. 미술관 입구 도로변에 있는 옛 서귀포관광극장은 지역주민협의회 주관으로 여러 빛깔 공연이 잇따르는 등 거리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서귀포시에서 개발한 또 다른 도심 걷기 코스인 '하영올레'도 이중섭거리를 지난다. 최근에는 그에 더해 체류형 야간 관광 체험 상품으로 '하영올레 빛의 하영'을 개장하면서 걷기 코스 내 볼거리로 서귀포관광극장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수백억 원을 들여 추진하는 이중섭미술관 신축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 거리는 또 한 번 변신하게 될 것이다.

이중섭거리와 잇닿은 곳에는 솔동산 문화의 거리가 있다. 역사 유적인 서귀진지를 품고 있는 거리로 한때 '서귀포의 명동'으로 불렸을 만큼 번화했던 곳이다. 2009년부터 조성돼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900여 m 길이의 솔동산거리에는 갖가지 조형물과 안내판이 세워졌다.

2012년 제정 후 몇 차례 개정된 제주도 작가의 산책길과 문화예술시장 운영·관리 조례가 있다. 이에 따르면 제주도는 작가의 산책길을 포함한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를 아우른 문화예술시장에서 문화예술단체의 각종 공연·전시, 문화예술제 등을 연 1회 이상 개최하도록 권장·지원한다고 했다. 또한 작가의 산책길과 문화예술시장의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한 기본계획을 3년마다 수립하면서 문화시설 설치, 문화예술 관련 업종 육성에 관한 사항을 넣도록 했다. 이 중에 문화예술 관련 업종으로는 화실, 필방, 도자기 전시와 판매, 토산품과 민속가구, 고서점, 문화예술 관련 학원과 사무실, 실내 문화예술 공연장과 전시장 등이 제시됐다. 조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촬영한 인근 마을 풍경. 저 멀리 섶섬과 문섬이 보인다. 진선희기자



▶문 열거나 닫은 점포… 문화 프로그램 인력 얼마나=작가의 산책길, 하영올레 등 서귀포시에서 기획한 도보 코스에 빠지지 않는 솔동산거리이지만 그곳을 목적지로 정해 떠나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다. 지정 초기에 음악과 미술이 있는 공간을 가꾸고 상징물을 설치하는 등 문화로 특화된 거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나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지역의 근대역사문화 자료를 모아 발간한 책자에서 "이 순간에도 솔동산의 낮은 집들이 헐리고 모텔과 단기 거주자를 위한 임대형 건물이 경쟁하듯 들어서고 있다"('서귀동 솔동산마을')며 마을회장이 아쉬움을 드러냈는데 지금은 어떨까.

먹거리가 있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야시장의 북적거리는 광경에 비해 야간 시간대 이중섭거리는 한산하다. 서귀포관광극장 미디어 파사드가 밤거리에 빛을 밝히고 있어도 아직은 그 하나로 발길을 붙잡기는 어려운 것 같다. 솔동산거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그 거리에 수많은 콘텐츠를 도입해 펼쳐 왔지만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돌아본 이들을 남측의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로 이끌 동력은 부족해 보인다.

오늘날 '문화도시 서귀포'라는 이름을 얻기 이전에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가 있었다. 서귀포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드나들었던 그 길에 서귀포시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거리가 각각 속한 정방동과 송산동은 세찬 도시의 흐름 속에 이제는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자연감소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지역에 활력을 주는 방안 중 하나가 관광형 생활인구를 확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거리의 정체성을 살리는 상권 모색과 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에 문을 열거나 닫은 점포, 문화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채용된 인력의 현황과 추이를 알아보고 개선점을 찾는다면 지역주민들이 바라는 이 거리의 내일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두 거리를 관통하는 도보 길이 여럿인 만큼 그에 맞는 보행 환경도 뒷받침돼야 한다. 걷기 좋은 거리는 도시의 경쟁력이다. 이미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 거리이지만 완성형이 아니다. 이 거리를 통해 사람과 문화가 도시를 어떻게 바꿨고, 바꿔야 하는지 들여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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