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이중섭거리 미디어 파사드 '관객 없는 무대' 될라

[진선희의 백록담] 이중섭거리 미디어 파사드 '관객 없는 무대' 될라
  • 입력 : 2024. 01.22(월) 00:00  수정 : 2024. 01. 22(월) 09:08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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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밤거리를 지나는 이들이 드물었다. 낮에는 제법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저녁이 되면 다른 얼굴로 바뀌는 듯 했다. 이즈음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 몇 차례 찾았던 거리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서귀포시 이중섭거리다.

야간 시간대 그 거리에 활력이 넘치도록 하겠다며 서귀포시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시도한 일이 옛 서귀포관광극장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였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 외벽을 캔버스 삼아 디지털 기술로 빛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작업을 말한다. 서귀포시는 이중섭미술관 인근에 자리한 서귀포관광극장의 특징을 살려 이중섭이 남긴 그림 등 30여 점을 소재로 7분 분량의 작품을 제작했다. 내레이션을 입힌 다큐멘터리 방식의 영상은 서귀포관광극장에 공연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볼 수 있다. 하절기에는 오후 7~9시, 동절기엔 오후 6~9시에 반복적으로 영상을 틀기로 하면서다.

미디어 파사드가 그 거리를 환하게 밝힌 지 3개월이 흘렀지만 기계만 부지런히 돌아가는 모양새다. 서귀포시는 근래 공공용지로 매입한 서귀포관광극장 입구에 미디어 파사드 상영 시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는 등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화제를 모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영상이 가장 잘 보이는 거리의 바닥에 관람석까지 표시했지만 그 앞에 멈춰 서서 작품에 집중하는 이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미디어 파사드를 목적지로 삼고 이중섭거리로 향하는 사례가 몇몇에 그친다는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 본격 가동에 맞춰 서귀포시에서 만든 도심 걷기 코스인 하영올레의 야간 길 개장 행사를 펼쳤던 날에는 사람들이 몰렸지만 '반짝 효과'로 끝이 났다.

2023년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 자료로 묶은 서귀포시 주요 업무 보고서를 보면 지난 한 해 서귀포관광극장 미디어 파사드 등 야간 경관 활성화 사업에 쓰겠다는 예산은 25억 원 규모였다. 새연교 음악 분수 레이저 보완, 새연교 미디어 글라스 설치, 서귀진지 경관 조명 등이 포함됐다. 앞으로 50억 원이 더 들어가는 등 2019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야간 경관 사업에 투입하는 비용은 계획상 120억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사업은 문화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추진됐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있고 그 안을 채울 프로그램이 없으면 자칫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미디어 파사드 하나로 이중섭거리에 야간 방문객을 끌어올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바깥 활동 정도에 차이가 나는데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중 미디어 파사드를 상영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객 유인 장치 없이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려 청중도 없는 무대에서 언제까지 공연자 홀로 노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은 미디어 파사드 기기가 오작동하며 밤새 영상이 송출됐던 적이 있다고 했다. 주변 거주지에서 빛 공해, 소음 민원을 제기할 수 있어서 관리 문제도 뒤따른다. 서귀포시가 미디어 파사드를 하영올레 야간 코스의 핵심 콘텐츠로 키운다는 목표를 뒀다면 좀 더 귀한 대접을 받도록 운영해야 한다. <진선희 제2사회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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