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의 강제 철거 명령에도 불구하고 클린하우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류수거함. 이 수거함에는 오히려 강제 철거시 고발 조치한다는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상민 기자
[한라일보] 제주지역에서 서로 다른 폐기물 수집·운반 업체가 같은 클린하우스 내에 따로따로 의류수거함을 설치해 시민들의 헌옷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헌옷 수거 사업 신규 공모에 탈락한 기존 업체가 선정 결과에 불복하면서 벌어진 일로, 해당 업체는 제주시의 철거 명령을 수개월째 거부하고 있다. 경찰과 제주도감사위원회는 이번 논란을 규명하기 위해 각각 조사에 착수했다.
11일 제주시내 한 클린하우스. 클린하우스 바로 옆에 의류수거함 3개가 밧줄로 서로 꽁꽁 묶인채 나란히 놓여 있다. 또 이 수거함에는 '개인 소유물입니다. 강제 철거, 이동, 훼손시 고발 조치 합니다'라는 빨간색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경고 스티커가 붙은 수거함 양 옆으로는 비슷한 모양의 의류 수거함 2개가 또 놓여있었다.
얼핏 보면 모두 다 같은 수거함 같지만 엄연히 소유·설치 주체가 제각각인 다른 수거함이다. 경고 스티커가 붙은 수거함은 A업체, 그렇지 않은 수거함은 B업체가 설치한 것이다. 같은 클린하우스 지붕 아래에서 서로 다른 업체가 시민들 헌옷을 수거하고 있다.
시는 지난 2021년 처음으로 '의류수거함 민간대행 사업자'를 공개모집했다. 시는 추자도 등 도서지역을 제외한 읍·면·동을 12개 구역으로 나눠 구역별로 1개씩 수거업체를 뽑았다.
시는 이전까지 '의류수거공동협의회'라는 곳과 1년 단위로 협약을 맺어 헌옷을 수거했지만, 이 협의회에 폐기물 수집·운반 자격이 없는 자생단체가 끼어있고 또 특정 단체가 수거 수익을 독점한다는 지적이 있자 공모제로 전환했다.
시는 12개 민간 업체에 2년간 헌옷 수거를 맡겨 행정력 부담을 덜고, 또 이들 업체는 수거한 헌옷을 팔며 수익을 얻었다. 도내 수거업계에 따르면 헌옷 1㎏를 팔 때마다 통상 300원의 수익이 남는다.
논란은 지난해 12월 시가 새 대행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 2년간 동 지역과 읍 지역 등 2개 구역에서 헌옷을 수거했던 A업체와 C업체는 신규 공모에 응모했지만 탈락했다. 그러나 이들은 선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신들 소유 수거함 수백 개를 그대로 클린하우스 곳곳에 남겨두고 지금껏 헌옷을 처리하고 있다. 두 업체는 법인만 다를 뿐 가족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 업체는 시의 계속된 철거 명령도 거부했다.
그 사이 올해 1월 신규 선정 업체가 A업체와 C업체가 버티고 있는 클린하우스 자리에 새 수거함을 설치하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시는 철거명령을 거부한 두 업체를 지난 7일 경찰에 공무집행방해혐의로 고발했다. 다만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는 공무원을 상대로 협박과 폭행 등 물리적 위력을 행사하며 공무를 방해하는 것이어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적용 혐의는 달라질 수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신규 업체가 떠안았다. 다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은 누가 설치했건 상관없이 아무 수거함이나 골라 헌옷을 집어넣기 때문에 신규 업체 입장에선 수익이 줄 수 밖에 없다.
올해 선정된 B업체 관계자는 "A업체가 철거 명령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우리 수거함을 밀어내고 새로운 수거함까지 갖다 놨다"며 "A업체가 우리 구역에서 헌옷을 계속 수거하면서 한 달에 300만원 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감사위도 조사에 나섰다. A업체 등이 새 사업자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진정을 넣음에 따라 감사위가 공모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업체 관계자는 '왜 새 사업자 선정 결과에 불복하는지' '철거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제주시도 A업체 등이 무슨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강제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엔 왜 나서지 않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경찰 수사 중이어서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한편 제주시 관내 의류수거함은 2400여개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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