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미술품과 호혜

[이나연의 문화광장] 미술품과 호혜
  • 입력 : 2024. 03.26(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 (로빈 윌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 중.)

인류학 전공자의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읽었다. ‘화랑의 미술품 거래 관행과 권력 관계’라는 제목으로 김용욱이 쓴 2016년 인류학석사 학위논문은 "화랑의 미술품 거래가 경제적 동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활동이며, 그에 수반되는 일련의 관행들은 경제적 목적과 비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화랑가의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썼다. 미술전공자가 아닌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화랑가의 거래 관행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논문이었다. 미술품은 과연 자본주의 시장 속 상품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원가나 유통비 등의 계산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추상적 '가치' 자체를 책정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

‘향모를 땋으며’에서 제시하는 호혜적 관계는 우리에게 잘못된 삶의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으로 정의되는 호혜는, 드디어 미술관까지 침투한 ESG경영을 내세우는 모든 분야에 적용가능한 대안적 거래 혹은 경영을 가능하게 할지 모른다. 게다가 미술시장에도 적합하게 사용 가능할 듯 하다.

관계미학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 단어, 호혜에 대한 생각과 재정의를 미술의 맥락에서 해보고 싶다. 호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물(혜택)에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지만, 사실은 다른 방식의 귀한 것으로 돌려받아 마땅한 선물. 화폐 가치로 책정하기 어려운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호혜는 성립한다. 작가들의 직접 만든, 돈으로 책정하기 어려운 작품이야말로 호혜의 정신을 반영하는 인류 문화의 선물은 아닐까? 인간의 능력만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인류에게 문화적 선물을 제공한다. 감히 값으로 책정하기도 어려운 선물이 된다. 루이스 하이드(Lewis Hyde)의 말처럼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유대 관계를 확립한다는 것은 선물과 상품 교환의 결정적 차이다" 선물 경제에서는 시장 경제와 달리 누군가가 준 선물이 다른 누군가의 자본이 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작품은 때로 자본으로 변환되기도 하지만, 그 의미가 여느 상품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귀하거나 성스러운 것은 팔 수 없다. 하지만 선물을 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 작가가 어떤 작품을 완성할 적에, 그에게 어떤 생활의 불편도 없도록 누군가가 혹은 사회가 모든 선물을 해주는 방식 말이다. 그러면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예술품으로 작가는 보답한다. 자연이 내어주는 식량 다음으로 예술만큼 인류에 호혜적인 행위는 없어 보인다. 호혜적 시각에서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고,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92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