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인가구 리포트] (2)청년 - ④ 은둔·고립 해법은

[제주 1인가구 리포트] (2)청년 - ④ 은둔·고립 해법은
“‘외로움’ 사회적 처방 내리는 영국… 제주 공동체 실험 늘리자”
  • 입력 : 2024. 09.02(월) 06: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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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기에 사회적 고립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고립 상태에선 2인 이상 가구일 때보다 혼자일 때 더 우울함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인가구 증가 속에 혼자 사는 고립 청년 늘어”
전담 지원 조직 없는 제주… 행정도 해법 고심
제주패스파인더 등 고립 청년 자립 지원 시도


[한라일보]"(직업이 필라테스 강사인데) 수업이 너무 없으니까 누워 있는 시간이 좀 많았고 집 밖에 잘 안 나가게 되고… (수업이 없는) 낮에는 만날 사람도 없고 일을 구하기도 애매하고… 외롭고 마음이 힘드니까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20대 여성, 제주시)

"(사회적 활동 중단으로) 시간이 아예 무한정으로 돼 버리니까 딱히 계획할 것도 없고… 나갈 이유도 필요도 없고 그냥 누워만 있으면서 계속 생각하는 거죠. (20대 남성, 제주시, 취업준비 중)

두 청년의 공통점은 '1인가구'라는 점이다. 이들은 3~4개월 정도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연구진)가 사회적 고립·은둔 상태인 제주 청년 2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진행한 심층 면접조사에서다. 이 같은 결과는 같은 해 12월 발표된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 고립청년 지원 기본계획 수립 방안 연구 보고서'(제주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담겼다.

혼자 사는 게 사회적 고립 위험을 높이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는 연구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이 1차 조사(1031명)에서 '고립 상태'가 감지된 제주 청년 135명에 대해 추가로 설문조사(2차)를 했더니 1인가구라는 응답은 17.8%였다. 2인(22.2%), 3인(28.9%), 4인(20%) 가구처럼 여럿이 같이 살아도 고립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조사에서 나타난 특정 지점의 '상관관계'다. 특히 2인 이상 가구보다 1인가구로 고립 상태에 놓일 때 우울을 겪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심하거나 중간 정도 우울을 겪고 있다는 1인가구는 54.2%로, 2인가구 이상(40.9%)보다 13.3%p 높았다. 똑같이 고립 문제를 겪어도 혼자 살 때 더 심한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고립·은둔 1인가구, 사회공포 심화”

현장에선 1인가구 증가세와 맞물린 연계성도 감지된다. 청년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립·은둔을 겪는 청년 중에도 1인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씨즈'의 이은애 이사장은 "(학업, 취업 등으로) 청년 인구가 많이 유입되는 서울 등 수도권에선 1인가구 증가에 비례하듯 1인가구의 은둔·고립이 많이 보이고 있다"며 "(씨즈가 운영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도 계속 교류하는 청년 3000명 이상의 60%가 1인가구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부모의 소득, 자산에 기대어 30~40년을 방 안에서 은둔하는 일본의 '히키코모리'와는 크게 다른 양상"이라며 "부모가 잔소리라도 하면 다투기라고 하겠지만, 절반 이상이 유튜브 등 디지털 매체만 보며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다 보니 고도의 우울감이나 관계공포증, 사회공포증, 시선공포증 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선 사회적 고립 청년을 위한 지원체계 마련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가구 형태를 떠나 공통적으로 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들이 다시 한번 사회 안에서 '자립'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제주에서도 청년 고립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런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제주도의 실태조사 결과 도내 고립·은둔 청년은 지난해 기준 19~39세 인구(16만3684명)의 4.7%인 7744명으로 추정된다. 몸이 아프거나 우울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에 있는 '고립' 청년이 2.2%(3683명), 6개월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가끔만 외출을 한 '은둔' 청년이 2.5%(4061명)이다.

제주에선 2021년 '제주도 사회적 고립청년 밀착 지원에 관한 지원 조례'가 제정됐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전담 지원 조직이 없었다. 공공 영역에서 고립·운둔 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기구가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다. 제주도 내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고심하고 있다.

강보배 제주도 청년정책담당관 청년활동지원팀장은 "가구 방문 등으로 고립 청년을 파악하는 것은 지원 조직이 아닌 행정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면서 "고립 청년을 (찾아내려다) 오히려 더 고립시키는 것을 막으려면 고립 청년 발굴부터 실질적인 지원 연계, 회복까지의 체계를 잘 구축하는 게 우선인 만큼 국책 시범 사업, 민간과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 사람·공동체 연결, 해법될 수도”

제주의 '괸당 문화' 등 지역만의 특수성이 청년들의 고립 상태를 더 드러내기 어렵게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강조되는 것도 청년들이 주변 시선에 갇히지 않고 다시 사회로 나서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제주패스파인더와 사단법인 씨즈가 협업해 운영하는 ‘제주 리트릿 프로젝트’. 수도권 고립·청년들은 제주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오늘을 기록하고, 공동 텃밭을 일구고, 제주 자연을 걸으면서 다시 사회로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패스파인더 제공

고용노동부의 청년성장프로젝트를 위탁 운영하는 '제주패스파인더'가 씨즈와 협업해 운영하는 '제주 리트릿 프로젝트'이 하나의 예다. 수도권 은둔·고립 청년이 일정 기간 제주에 머물며 같은 상황의 청년, 지역공동체와 연결되며 삶의 회복을 찾는 프로그램인데, 지난 7월에 제주를 다녀간 1기 6명 중 2명이 제주에서 자립을 도전하고 있다. 집 밖 출입을 멀리한 채 사회적 관계와 단절됐던 이들에겐 굉장히 큰 변화다.

이주현 제주패스파인더 센터장은 "씨즈는 전문 영역인 은둔·고립 청년 발굴과 케어를, 패스파인더는 도내 청년 농업가, 청년 창업가 등 인적 자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은둔·고립 청년들이 사회생활, 더 나아가 경제활동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는 지역사회이고 괸당 문화 등으로 은둔·고립 상태를 더 드러내기 쉽지 않다"면서 "지속적으로 은둔·고립 청년을 발굴해 왔던 민간단체와 협업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을지, 어떤 접점을 연결하면 가장 좋을지 를 계속해서 실험해 보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이은애 이사장도 "2018년 '외로움부'를 신설한 영국은 사회적 문제인 국민들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새로운 지원 센터를 만드는 대신에 의료보건 측면에서 '당신은 협동조합에 가서 어떤 활동을 해 보라'는 식의 사회적 처방을 내린다"면서 "제주도 역시 마을공동체, 청년단체, 사회적경제조직 등 시민사회 기반이 있다. 이런 공동체의 힘을 활용해 은둔·고립 청년들을 연결해 준다면 은둔 탈출을 위한 첫 발자국을 떼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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