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눈물의 맛
  • 입력 : 2024. 10.21(월) 01: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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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한라일보] 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아랫 입술이 윗 입술을 덮곤 한다.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되어 버리는 건 언제나 순식간이다. 나는 두 할머니 모두의 임종을 내가 살던 집에서 맞았다. 친할머니와는 10살 남짓 때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긴 시간을 한 집에서 함께 살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년 여를 함께 살았다. 두 분은 무척 달랐다. 외할머니가 팔 남매를 낳고 기르며 집안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는 대장부 같은 분이었다면 친할머니는 작고 여윈 체구에 어쩐지 종종 주눅이 드는 분이셨다. 그건 어쩌면 음식 솜씨에도 영향이 있었을 지 모르겠다. 바닷가가 인접한 지역에 살던 외할머니는 해산물을 비롯한 다양한 식재료로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 같았다면 친할머니는 늘 음식에 자신이 없어 했다. 친할머니와 함께 살던 유년 시절 엄마가 바깥으로 일을 하러 나가면 할머니는 나와 동생의 식사를 챙겨주며 늘 말씀하시곤 했다. '맛이 없어서 미안해.' 라고. 그런데 이상하지 할머니가 끓여주던 계란과 북어가 엉겨 붙은 밍밍한 북엇국의 맛이,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라면의 맛이었던 '효 라면'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입안을 맴돈다.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립다. 다시 재현할 수 없는 할머니와의 시간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래서 나는 울 때마다 할머니 얼굴이 된다. 작은 눈과 고르지 못한 치열로 천천히 들썩이던 할머니의 그 얼굴이 내게도 있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기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을 보고 너무 많이 울어서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극장 문을 열고 나가는데도 얼굴에 눈물이 범벅인 채였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는데 세면대 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나를 여전히 떠나지 않은 할머니가 있어서 또 한 번을 더 울고 말았다. 왜 그렇게 까지 울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손자와 할머니가 차곡차곡 쌓아간 2시간이 어느새 눅진하게 나에게 달라 붙어 영화의 후반부 부터는 마치 투 트랙처럼 나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투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관에서 만나기 어려운 태국 작품이다. 태국 화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국내 관객 정서와도 잘 맞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일까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가가 되는 법'은 아시아 전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태국 영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천만명이 모두눈물을 흘리고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강력한 신파를 탑재했나 하면 그건 아니다. 영화는 다소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그의 유산을 상속받고 싶은 철부지 손자 엠의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시작은 다소 불순하고 태도는 불손했던 게임 중독자인 손자 엠이 할머니의 시간과 교집합을 만들며 결국 같은 원 안에서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모양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아낌 없이 러닝타임을 쓴다.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하는 것부터 할머니의 일을 손자인 엠이 거들고 배우고 함께 하는 데까지 영화는 서두름이 없다. 내가 몇 살이 되어도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존재, 그가 몇 살이 되었다 해도 안길 수 있는 사람이었던 엠의 할머니가 결국은 세상을 떠난다. 차곡차곡 쌓아왔던 시간 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작아진 할머니의 몸 뿐이 아니었음을 손자 엠과 영화를 보던 관객 모두가 알게 된 순간 부터다. 극장이 눈물 바다가 되는 건.



모든 집안의 옷장에는 털어도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먼지의 세월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과 사고의 와중에도, 불편함과 불쾌함의 기류 속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할머니와 나의 관계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소리를 치며 화도 냈고 따지기도 했고 냉정하게 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밝아졌고 집안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갖은 불화 속에서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할머니는 혼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열린 방문 틈으로 돌아 앉아 가만히 들썩이는 등이 보일 때 마다 나는 또 금새 후회하고 할머니의 곁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늘 네 말이 맞다, 니가 옳다며 내 편을 들어줬고 어린 시절 음식이 맛 없어서 미안하다던 그는 여전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거나 혹은 입을 다무는 노인으로 변했다. 그런 할머니는 누구와도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나와는 언제든 서로의 방문을 덜컥 열 수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영화의 후반부 할머니와 어린 엠이 함께 걷던 길이 할머니가 떠나기 전 손자 엠이 다시 함께 걸은 길임이 스크린에 보여질 때 나는 할머니가 해주던 맛 없는 음식들이 너무 그리워서 엉엉 울어 버렸다. 저항할 수 없이 몸에 새겨진 어떤 감각이 고스란히 감정으로 나를 흔든다는 걸 그때서야 알아 버린 것이 너무 기쁘고 미안해서 였다. 단 한 사람에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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