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온라인 서점에 '이기는 습관'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여러 권의 책 제목들이 주르륵 뜬다. 한 권 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엇비슷한 제목의 책이 많다는 것은 그 수요를 방증 한다. 그러니까 모두가 '이기는 습관'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기분과 태도'라는 두 단어의 조합인데 이 또한 검색 하는 순간 수십 권의 엇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어쩐지 이 두 사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는 기분'이나 '습관과 태도'로 단어의 위치를 바꿔 조합해도 그럴싸하게 읽힌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무한의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이기고 싶어한다. 이건 승리의 쾌감 때문 만은 아니다. 이 비정한 경쟁 사회는 지는 사람의 몫을 가차 없이 빼앗겠다는 공포의 감촉을 경기에 참여한 모두의 살갗에 가져다 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는 사람들의 습관, 그 비결은 어쩌면 그 공포 앞에서 자신의 기분과 태도를 조율하는 비장한 균형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채찍질에 다름 아닐 끊임 없는 자기계발이라니 어쩐지 아찔하다. 모두를 각자의 관리자로 만들어 쉼 없는 셀프 평가에 던져 놓는 시대.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이 고된 경기를 계속해야 할까.
신연식 감독의 영화 [1승]은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핑크 스톰'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 한 번의 승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재벌 후계자이자 구단주인 강정원(박정민)은 최약체 팀의 기적적인 승리를 기업의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실패의 전적으로 이력서를 가득 채운 감독(김우진)을 팀의 수장 자리에 앉힌다. 이건 강정원의 승부수다. 김우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얼토당토 않은 강정원의 제안을 수락한 남 모를 꿍꿍이가 있다. 이건 벼랑 끝의 김우진이 잡은 마지막 서브의 기회이기도 하다. 에이스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핑크 스톰의 면면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선수 간의 반목이 심한데다 승리는 둘째 치고 경기 자체에 대한 의욕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 불협화음의 상태에서도 그들 또한 한 번은 이겨야 한다. 배구 선수로, 팀으로 존재하려면 말이다. 승리는 그들의 직업과 생계를, 자존심과 일상을 지켜줄 어쩌면 유일할 무기이니까. 갑작스런 폭풍이 닥쳐 왔다고 해도 갑자기 농구 선수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상한 구단주와 의뭉스러운 감독, 혼돈에 빠진 선수들은 그렇게 괴상한 믹스 매치로 이루어진 한 팀이 된다. 단 한 번일지라도, 우리의 1승을 위해.
영화 [1승]이 흥미로운 건 구단주 강정원이 핑크 스톰의 1승에 내건 공약의 명확한 수혜자가 팀 핑크 스톰이 아닌 경기를 보는 관객들이라는 것이다.. 구단주도 감독도 그리고 선수들도 관객들에게 돌아가는 만큼의 물리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1승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약속도 보장도 되지 않는 경기 이후의 미래를 그들은 낙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안되면 되게 하라'의 정신은 아니고 '될 때 까지는 해보자'의 작심이다. 어쩌면 신연식 감독은 낡은 습관을 이기고자 하는 이 사람들이 새로 갖춘 태도를 통해 얻는 순수한 승리의 기분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단 한 번의 승리로 향하는 동안의 무수한 실패를 통해 조금씩 서로에게 교정되는 마음의 자세들을 들여다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 [1승]은 최대한 각 인물들의 사연을 전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거의 그들이 어떤 상황이었건 미래의 그들이 얼마나 환골탈태한 모습이 되건 [1승]은 과거의 영광이나 장밋빛 미래에는 큰 관심이 없는 영화다. 다만 충실하게 코트에 오르고 숨 가쁘게 경기를 펼치는 이들과 그 경기를 숨 참고 지켜보는 이들의 또렷한 현재에 집중한다. 나로서 지금을 산다는 것은 나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끌어 안고 살며 자주 부대끼는 프리 허그가 아닐 리 없다. 영화 속 대사처럼 누군가의 단점이 사라지면 장점이 사라질 수 밖에 없을 테고 마찬가지로 패배가 없다면 승리 또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자주 못나고 종종 기특한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줄 때 우리의 팔은 점점 더 길어져 결국 타인에게도 닿는 것이 아닐까.
기적과도 같은 한 번의 승리 뒤에도 당연히 여러 번의 패배가 따라 올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백전백패의 상태로도 우리는 생의 끝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생의 경기에서 만날 이들이 삶의 동료가 아닐 리 없다. 이기는 습관 보다 중요한 지지 않는 마음을 생각하며 다음 경기를 기다린다. 대차게 지더라도 세차게 끌어 안을 그 짜릿한 순간들에 충분히 설레면서.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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