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사회'를 뜻한다. 1516년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이고, 우리는 흔히 유토피아를 이상향(理想鄕)이라고 한다.
토머스 모어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라는 가상의 섬을 설정했고, 그 안에서의 정치·사회·경제 제도와 생활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회를 그려냈다. 주거와 일상생활은 물론 외교와 국방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주를 생각해 본다. 제주지역은 유토피아와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와 유토피아는 공간적으로 닮은 점이 있다. 공간적인 규모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다르지만, 두 곳 모두 '섬'이라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섬이라는 공간은 외부와 분리돼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질서와 제도를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제주지역은 지리적으로 육지와 구분되며, 그 속에서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오랫동안 간직해 왔다. 이러한 특성은 제주의 유토피아적 상상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제주의 자연은 유토피아적 삶의 조건과 깊이 연결돼 있다. 오름과 돌담, 바람과 바다는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제주의 흔적을 보여준다. 강한 바람과 거친 토양 속에도 제주의 사람들은 자연을 바꾸기보다 그 흐름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연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실천해 온 증거이며, 오늘날 지속 가능한 삶의 모델로서도 의미가 크다.
세 번째로 제주의 공동체 문화는 유토피아가 지향하는 사회상과 맞닿아 있다. '수눌음'으로 대표되는 상부상조의 문화, 마을 단위의 공동체 운영은 경쟁보다 협력을 중심에 둔 삶의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현대 사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제주지역은 급격한 개발과 외부 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때로는 투기와 재산 증식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만이 계속된다면 제주가 가진 유토피아적 가능성은 점차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500여 년 전의 토머스 모어가 경고했듯, 이상향은 제도와 가치가 함께 지켜질 때 유지될 수 있다.
제주를 유토피아로 만들자는 말이 과한 욕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꿈과 목표는 클수록 사회의 방향을 바로잡는 힘이 된다. 제주는 지리와 자연, 공동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해 온 삶의 방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제 제주를 유토피아로 상상하는 일은 가장 현실적이고도 필요한 상상이 아닐까. <이성용 제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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