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천년고찰 "법화사 창건시기 고려 전기 또는 그 이전"

제주 천년고찰 "법화사 창건시기 고려 전기 또는 그 이전"
'법화사의 위상, 보전과 활용' 주제 학술세미나서 제기
홍기표 이사 "창건주체도 탐라 지배층, 토호 세력 주도"
김경주 원장 "중창불사는 원나라 왕실 도움 받아 진행"
  • 입력 : 2026. 07.16(목) 17:15  수정 : 2026. 07. 16(목) 19:18
  • 백금탁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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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사가 주관한 '법화사의 위상, 보존과 활용' 학술세미나가 16일 현지 구화루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고려시대 대표 사찰인 법화사의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하고, 제주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한편 향후 보존과 활용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한라일보] 천년고찰 법화사의 창건 시기가 고려 전기 또는 그 이전이며, 창건 주체 또한 고려의 영향력을 최소화한 상황에서 탐라 지배층이나 제주 산남지역 토호 세력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화사의 위상, 보전과 활용' 주제로 16일 법화사 구화루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은 주장이 나왔다. 이번 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법화사 주관,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 주최, 제주특별자치도세계유산본부와 제주학연구센터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홍기표 제주역사문화진흥원 이사는 '법화사의 연구성과 검토와 위상 재조명'의 주제발표에서 현재까지 법화사 연구의 주요 주제는 창건 시기 추정, 중창의 주체와 의미, 승려 혜일, 기능 변천, 폐사와 복원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홍 이사는 중창의 주체와 관련 "법화사의 창건은 중창 연대를 알려주는 기와 명문에 따라 1269년~1279년 이전으로 고려 전기 또는 그 이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며 "특히 창건의 주체는 고려의 영향력이 최소화한 채 탐라 지배층 또는 제주 산남 재지 토호 세력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 이사는 "법화사 중창의 시공과 완공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중창 시기에 포함되는)1273년 삼별초 진압 이후는 원의 통치 기구 설치, 원 관리의 파견이 진행돼 법화사 완공에는 다루가치와 목호 등 원 세력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은 '법화사의 발굴조사 성과와 향후 계획'의 주제발표에서 "법화사는 12세기 이전 어느 시점에 창건돼 1260년대 삼별초 입거 이후 중창이 시작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며 "1273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에게 평정된 이후 원나라 군대가 주둔하면서 1273년 6월 탐라국초토사를 설치했고 1275년에는 다루가치가 파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화사의 중창불사는 1273년 이후 원나라 왕실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진행돼 1279년에 준공됐다"고 제시했다. 그 배경에 대해 "일본과 남송 정벌을 앞둔 원나라 황실이 탐라를 전략적 교두보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화종 한양대학교박물과 연구교수는 '법화사의 보존과 활용방안' 주제발표에서 "법화사의 보존과 활용은 구품연지를 중심으로 역사적 가치와 종교적 기능, 지역사회와 방문객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법화사가 지닌 문화유산적 의미를 온전히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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