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감투는 우리 선인들이 썼던 모자의 일종이다. 이것은 높은 벼슬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고, 사전은 더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감투를 쓴 사람'이 속물로 보일 때가 있다. 지위를, 그룹과 커뮤니티를 위한 헌신과 봉사가 아니라 자신의 공명이나 권력 혹은 사익의 추구에 이용하는 자들이 이 무리에 든다. '감투'라는 지칭은 본인이 속한 집단과 그 구성원들에게도 반가운 게 아니다.
감투가 높은 자리를 비하하는 비유물이 된 연유가 궁금했다. 그 언저리를 살펴보았다. 과거 머리에 쓰던 것들로는 양반의 갓, 낮은 신분이나 평민의 초립, 사대부의 정자관, 부녀자의 족두리, 방한모인 남바위, 관복과 같이하는 사모 등이 있었다. 상투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에 두르는 망건이 있었다. 벼슬아치가 집에서 단독으로 쓰거나 갓 아래 받쳐 쓰는 탕건도 있었다. 감투는 벼슬 없는 서민이나 벼슬아치가 집에서 편하게 쓰던 관모였다고 한다. 이것은 탕건과 비슷한데 턱이 없이 밋밋한 민머리 형태라는 점에서 그것과 달랐다. 감투는 벼슬의 유무와 무관했으나 탕건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감투를, 자격이 없거나 모자란 자가 흉내질하는 벼슬에 빗대었는지 모르겠다.
달갑지 않은 이 '감투'는 꽤 여러 곳에서 보인다. 감투일 수 있는 자리는 기업과 행정관서 소속부터 자생단체와 비영리 단체, 공적 조직, 각종 위원회와 대의 기관에 이르기까지 그 수장이나 간부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부지기수이다. 감투는, 구조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보다 장본인의 욕심과 능동적인 공력에 의해 취득되는 게 훨씬 더 많다. 감투는 여러 사람에게 고루 나누어지기도 하고, 탐하는 자에게는 여러 개가 또 오래 주어지기도 한다. '감투를 썼다.' 역시 냉소적 표현이다. 이는 당사자가 그 자리를 얻는 과정에서 무리를 범하였거나, 현직에서 도의를 저버리거나, 역할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어쨌든 그 자리에는 적절치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 표현이 어울린다면 그자는 조직의 안팎에서 권위와 존재감이 실추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직위는 어떤 경우에도 가볍게 여겨져서는 아니 된다. 그 자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권한을 위임해 준 공동체의 위상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게 '감투'로 불리면 그곳 식구들의 체면도 함께 손상된다. 실제의 감투는 말총이나 가죽, 헝겊 따위로 만들어져서 그 무게가 달걀 한 개보다 가볍다. 그러나 그 위치가 필요로 하는 역량과 그 사회가 요구하는 책무의 무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제 보니 감투를 쓴 자가 목에 힘주는 것을 이해해야 하겠다. 그 무게를 버티느라 그러고 있을 테니, 이는 흉볼 일이 아니겠다. 고개를 마음껏 들려면 버거운 자리는 사양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겠다. 아니면 감투를 쓰고도 그 부담을 무시하면 되겠다. 하지만 그 대신 목덜미로 쏠리는 평범한 뭇사람들의 매서운 경멸의 눈초리는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이종실 수필가·시인·한우리 연구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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