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숲길' 한라산 둘레길 시대 열린다](4·끝)역사문화유적

['환상숲길' 한라산 둘레길 시대 열린다](4·끝)역사문화유적
한라산 숲길에 화전농업 흔적
  • 입력 : 2011. 04.28(목)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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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향토지에도 도내 화전농업의 역사 기록
하천 등 물 인접지에서 메밀·조·감자 등 재배
4·3주둔소·숯가마터도… 법정사는 항일유적지

'환상숲길'은 다양한 역사문화 공간을 넘나든다.

해발 700m 도순천 상류 지경에서는 일제시대까지 제주에서 이뤄지던 화전터의 흔적이 확인됐다. 화전(火田)은 중산간지대 목장지대나 숲을 태워 사용했던 경작지다. 제주에서 19세기를 전후해 이뤄졌던 화전의 흔적은 한라산 목장지대에 대한 농경지화 정책 등 화전의 진행과정과 경제 활동, 당시 도민들의 농업형태를 엿보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화전은 탐사 구간 여러곳에서 그 흔적이 엿보이는데다 과거 중산간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에 비춰볼 때 앞으로 진행될 환상숲길 탐사구간으로도 이어져 하나의 '화전 벨트'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펴낸 '한라산의 인문지리'에 의하면 1894년 공마제도가 폐지되면서 무상으로 경작지를 얻을 수 있는 화전이 제주도 전 중산간 지역으로 확대된다. 마을에서 펴낸 향토지에서도 화전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서귀포시 하원향토지(1999년)에는 "하원리 인구동태를 호적중초를 찾아서 보면 가경 15년(1908년)에 화전민 인구표시로 15호에 41명의 화전민(화동인)이 너른도 등에 분포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또 동홍동지(2003년)에서도 화전의 기록이 있다. "동홍마을 미악산 서북쪽에 연저골이 있다. 1930년대까지 연저골에는 15여호가 화전생활을 하며 동네를 이뤄 살았다. 연저골 서북쪽 300m 지점에 생수가 솟아나는 곳이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제주도 화전은 일제가 산림보호 명목으로 금지정책을 펴면서 193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축소돼 간다. 다른지방보다 빨리 제주도 화전이 소멸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도민이 급격히 늘면서 굳이 화전이 아니어도 농촌경제활동이 가능한데다 '4·3' 때 산간마을의 소개에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라산 둘레길을 가로지르는 도순천은 서귀포지역의 역사유적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공간이다. 법정사는 한라산 둘레길의 시점이기도 하다. 법정사는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의 근거지였다.

'법정사 항일투쟁'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10월 6일에 400여 명이 주민들이 중문주재소를 습격했던 사건을 말한다. 법정사 항일투쟁은 3·1운동 이전 일제에 항거한 전국 최대 규모의 단일 투쟁일 뿐만 아니라 제주도 최초·최대 거사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의 시발점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알려지지 않았던 4·3주둔소 확인도 탐사과정에서 얻은 수확중 하나다. 서귀포시 시오름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500m쯤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주둔소는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에다 성담과 망루 등을 갖춘 주둔소는 외성이 삼각 구조로 눈길을 끈다. 기존에 발견된 시오름 하단부의 주둔소와 비슷한 형태로 4·3 당시 토벌작전 전개과정과 주둔소 구축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현장으로 평가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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