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농·귀농인의 이야기](16)한경면 저지리 석창포 농가 좌경진씨

[부농·귀농인의 이야기](16)한경면 저지리 석창포 농가 좌경진씨
"약용작물 재배는 시간과의 싸움"
  • 입력 : 2011. 09.28(수)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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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밭에서 좌경진씨가 제주산 석창포를 뽑아 보여주고 있다. 좌씨는 국내산 석창포의 85%를 생산하며 자부심과 함께 억대의 부농으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ihalla.com

석창포·적작약·반하 연간 3억원대 출하
국내 생산량 85% 점유하며 자부심도 커
고품질 쇠무릎·맥문동·산초에도 도전장

"사업하다 망하면 마지막으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무작정 농사를 짓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은 망하고 만다. 요즘 농부는 농사법도 알아야 하고, 하우스도 쳐야하고, 기계도 고쳐야 하고, 유통도 해결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이어야만 가능하다. 최근 농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데 농부는 무엇보다 부지런하고, 수없이 도전해야 하고, 직장을 다니듯 성실해야 한다."

한경면 저지리 출신인 좌경진(50)씨는 자신만의 농사철학을 '도전'과 '성실'이라는 말로 함축한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제주산 석창포(2만9700㎡)와 적작약(1만4850㎡), 일명 제주에서 '삼마'로 불리는 반하(990㎡) 등 약용작물을 재배하면서 연간 억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부농이다. 가족도 부인 문화자(49)씨와 함께 2남2녀를 둔 부자다.

하지만 그의 성공기에 앞서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을 결심한 지난 20여년은 녹록치 않았다.

"귀촌 후에도 지난 98년 당시 IMF 사태를 맞으며 일도 잘 안되고 감귤값도 떨어지는 등 전체적으로 힘들었다. 젊은 시절 덤프트럭을 소유하며 도시생활을 했지만 이렇다할 소득없이 '빈손'으로 귀향했다. 당시 한의원을 운영하는 사촌동생(좌윤택·47)이 한약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석창포를 심어보라는 권유로 약용작물에 도전했다. 석창포를 구하는데 온 동네를 뒤졌고 결국 두집을 찾아내 전량을 36만원에 구했다. 아주 작은 양이어서 매년 뿌리를 잘라 번식하는데 힘을 기울였고 첫 출하까지도 평균 4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인삼처럼 수년을 투자·관리만 하는 쉽지 않은 농사였다."

인고의 세월 이후 석창포가 제값을 받으면서 이제야 보상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결실로 농협중앙회는 2007년 8월 이달의 새농민으로 한경농협 조합원인 이들 부부를 선정했다. 고품질 감귤생산을 위해 만감류 신품종인 '베니마돈나'를 제주에 도입하고 석창포 등 감귤대체 약용작목 개발에도 힘써온 선도농업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마을청년회장과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 청년 등에게 약용작물을 권유했지만 대부분 수익시점까지 너무 장시간이 소요돼 도중하차하고 만다고 했다. 일이 쉬운 감귤농사에 길들여져 있어 그렇다고 했다. 그만큼 약용작물 재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석창포에는 병충해가 없다. 살균·살충을 할 필요도 없고 땅에 굼벵이가 많아도 뿌리를 먹지 않는다. 농부가 하는 일은 잡초 제거와 양돈농가에서 발효해 만든 돈분을 뿌리는 것이 전부다. 2~3년간 잡초를 뽑아주며 잘 관리하면 수익은 보장된다. kg당 1만5000원을 받는데 연간 2억2000만원에서 3억원 가량을 수확한다. 국내산 85%를 생산하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현재 고품질 반하생산을 연구하고 있고 앞으로 쇠무릎(우슬), 맥문동, 산초(재피) 등에도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도전은 곧 위험과 인내를 감수하지만 고소득을 올린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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