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그림, 시 그리고 사람 이야기

풍경, 그림, 시 그리고 사람 이야기
최열의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 입력 : 2012. 11.30(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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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최열은 '탐라순력도'와 '내왓당 무신도'에서 제주의 속살을 봤다. 제주를 만나는 물과 길, 그리움과 두려움이 출렁이는 제주해협과 오름의 왕국에서 만나는 올레길 이야기에서 길을 시작한다. "나의 순력은 가슴 설레는 오름과 올레로 가득찬 탐라 전경으로 시작한다. '해동지도'에 포함된 '제주삼현 오름도'는 한라산을 비롯한 섬 전역의 오름을 봉긋하게 그린 작품이다. 참으로 어여뻐 견딜 수 없는 그 모습이어서 민요 '오돌또기' 가락에 춤을 춘다."

첫 번째 길은 해안선 동쪽을 따라 화북, 조천부터 성산을 거쳐 정의, 성읍에 이르는 땅의 이야기다. 이곳 풍경에 숨어 숨 쉬는 숱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화북포구와 조천포구에서 잃어버린 나루터를 떠올리고, 김녕굴에서는 땅의 입술, 그 황홀한 지옥 풍경을 떠올린다. 수산 혼인지와 섭지코지에서는 그 여인의 슬픈 사연이 그리고 성읍 처녀와 김영갑의 눈물도 따라간다.

두 번째 길은 유구 왕국을 유혹하는 남해 그리고 그 남해를 마주하고 있는 서귀포시 이야기다. 산 사람의 흔적이 널린 제주시와 달리 하늘의 흔적이 즐비한 서귀포시는 천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무늬가 없는 건 아니다.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그리고 구럼비 바위의 눈물까지 그 무늬를 발견하고서야 서귀포시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길은 안덕계곡을 거쳐 대정의 산방산에서부터 모슬포를 지나 명월, 애월의 항파두리에 이르는 땅에 잠긴 이야기다. 모르는 이에겐 놀라움의 연속일 것이고, 알고 있다고 해도 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줄 어찌 알았을까. 세한도로 의리를 지킨 김정희와 이상적, 엇갈린 운명의 유배객 광해와 정온을 생각하고, 제주의 영웅 이재수가 눈앞에 드러난다.

네 번째 길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일대를 순력한 기록이다. 백록담이며, 영실기암, 산장지구를 같이 떠도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슬픈 설문대할망과 광해에게 말을 바친 김만일 가문의 이야기는 덤이다.

저자는 '내왓당 열두 신위전'을 형상만이 아니라 색채나 동세, 구성 그리고 그 화폭이 내뿜는 기운 모두가 놀랍도록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어 제주 심방 세계를 드러내는 최고의 예술품으로 꼽았다. 담채를 대담하게 운용한 수채화풍에다가 형태를 뒤틀고 굽히는 기술을 구사하여 험하고 위태로운 형상을 연출해냄에 신기한 분위기를 감돌게 하는 데 성공한 '탐라순력도'의 재발견과 해석도 놀랍다. 서해문집.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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