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의 모든 역사

길에서 만난 세상의 모든 역사
조지욱의 '길이 학교다'
  • 입력 : 2013. 11.08(금) 00:00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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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은 동시에 길을 열었지만 그 길은 이미 자연이 품고 있었다. 초식동물이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면서 드넓은 평원에 길을 만들었고,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러 오가며 산속이나 정글에 길을 냈다. 강은 저 혼자 구불구불 흐르며 요란한 공사 과정도 없이 물길을 냈다.

인간은 자연의 길을 편의와 용도에 맞게 넓히거나 곧게 폈고, 없던 길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이 길을 통해 문명이 발달하고 나라가 번영했고, 또 이 길을 따라 문명이 쇠하고 나라가 멸망했다. 길은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인간 역사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장소다. 따라서 길은 그 자체로 인문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며, 길을 고찰하는 일은 곧 인간과 인간이 이룬 세계를 통찰하는 출발점이 된다. 다양한 배움을 얻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제도가 학교라면 길은 개인의 일상과 인류의 역사가 평행하는 비조직적인 노천 학교인 셈이다.

사람이 오가는 길만 살펴봐도 직업, 취향, 건강 상태, 가족 관계, 경제력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서일 뿐이지만 결국 수많은 개인의 역사가 모여 이 땅의 지리, 인간의 역사를 이룬다. 길에 새겨진 어떤 시간을 토막 내어 들여다보아도 그 속엔 그 시간의 역사가 있다. 이로부터 당대의 생각과 생활상, 문화 등을 엿볼 수도 있다.

시간을 중심으로 풀어낸 학문이 역사학이라면 공간을 중심으로 풀어낸 학문이 지리학이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듯 이 두 학문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삶을 이루는 두 개의 큰 축, 시간(역사)과 공간(지리)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허브가 바로 길이다. 그러므로 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 지리와 세계 지리, 우리 역사와 세계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책의 1부에서는 '길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길의 탄생과 변천을 다양한 문화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밝힌다. 2부에서는 세계의 대표적 산에서 우리나라의 여러 고개까지 사람들이 산길에서 찾고 구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3부와 4부에서는 각각 강길과 바닷길을 통해 문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물길이 다른 세계와의 교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갯벌을 막아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책은 길의 탄생과 변천 과정을 밝히고, 동양과 서양의 길을 비교함으로써 동양의 사고와 성향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들여다본다. 길에 담겨 있는 인간의 발자취를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쳐 볼 수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3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조지욱 지음. 낮은산.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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