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추진하는 전기차 보급정책은 전기차 인프라·생태계·문화 등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제주도의 전기차 2.0시대 선포 기자회견.
제주도 컨트롤타워 구축 의미있는 성과 기대내연기관 대체로 발생할 문제 대책 강구해야행정당국·민간업체·소비자 등 인식전환 필요
'탄소 없는 섬 제주'를 실현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전기자동차 보급사업이다.
올해 전국 전기차 보급물량의 절반인 4000대가 제주에 배정됐다. 4000대 중 몇 대가 보급됐을까. 하지만 몇 대를 보급했으니 정책이 성공했다거나, 혹은 실패했다고 단순히 정량적으로만 판단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많은 유의미한 성과들도 함께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전기차 2.0시대' 선포=올해 '전기차 메카 제주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연재하며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과 사업들을 들여다봤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부터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이외에도 전기차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이들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전기차 보급정책,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가. 전기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인 충전 인프라와 차량 주행거리 한계 등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도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거나 곳곳에 집중 충전소를 구축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대심리로 인해 현재 전기차 구매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테슬라의 국내시장 진출과 맞물려 국내·외에서 출시되고 있는 최신 전기차의 배터리 문제와 주행거리 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청계천에 설치됐던 제주도 전기차 홍보 부스.
그러나 이 같은 산업생태계의 변화에 발맞춰 행정당국의 정책추진이나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실제 제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기차 신산업과 관련해 민간분야와 행정당국과의 협의 과정을 보면 '참으로 갈 길이 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시설 설치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관련부서, 행정시, 읍면동의 입장이 모두 달라 민간 업체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해당 주체 간 입장차이로 사업추진이 지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개월간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다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고위 간부가 나서서야 해결됐다는 후문이다. 그것도 20분 만에 말이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전기차 정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부서는 권한을, 어떠한 부서는 책임을 지게 되는 등 입장차가 발생하는 정책의 경우 추진이 쉽지 않고 공전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하물며 지자체를 벗어나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한계와 문제는 여전하다.
2016 전기차 엑스포.
지난 6월 새누리당 김규환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전기차 정책 관련 컨트롤타워를 정하라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중국 등은 컨트롤타워를 정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며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한국은 전기차를 담당하는 곳만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3개 부처 7개 과에 분산돼 있다"며 "각종 규제철폐, 보조금 지급, 충전소 설치 등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단 제주에서라도 올해 하반기 인사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한 일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제주도는 조직개편을 통해 전략산업추진단 내에 전기차정책팀, 전기차산업팀, 에너지산업팀을 꾸려 역량을 극대화 하고 있다. 나름 '탄소 없는 섬 제주' 구축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졌고, 앞으로 유의미한 정책과 성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제주도는 9월 30일 기준으로 전기차 3608대가 등록됐다고 밝히며 도내 전 차량대수의 1% 이상을 점유하게 된 기점을 맞아 10월 4일 '전기차 2.0시대'를 선포했다.
'전기차 2.0 시대'는 그동안 보조금 위주의 보급정책에서 인프라, 생태계, 문화, 관광 위주로 변화하고 관 주도에서 전기차 사용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한 'Open Innovation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제주도는 설명하고 있다.
제주도는 전기차 이용자들과 함께하는 'Fun Fun EV Road'를 조성하고, 전기차 이용자 포럼·페스티벌을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등 이용자를 중심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오슬로 뭉크박물관 인근의 전기차 주차장.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취재차 방문했던 노르웨이 오슬로시.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고 세금감면이나 버스전용차로 운행 허용 등 각종 인센티브 정책도 눈길을 끌었지만, 정책의 다른 한 축은 바로 내연기관 차량 사용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오슬로시 중심에 아예 주유소를 없애버렸다. 전기차 외에는 주차도 힘들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전기차 구매 수요를 높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였다.
제주에서도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벌써부터 볼멘소리가 나오고는 있지만, 제주도청 주차장에 조성된 일부 주차구역을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으로 전환한 것이다. 제주도는 최근 도청 주차장의 전기차 주차구역을 기존 15면에서 43면으로 대폭 늘렸는데, 민원인들이 이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시의 사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됐다. 정책당국의 강력한 의지로 읽혔다.
하지만 단순히 전기차 보급을 늘리고, 충전 인프라를 대폭 확대하고, 전기차 이외의 차량 운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 앞에 세워진 전기차.
현재 제주도는 인구급증과 늘어난 차량으로 인해 심각한 교통체증과 주차난, 불법주차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문제는 단순히 전기차를 늘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면서 전기차를 늘려가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후 미래에 전기차로 모두 대체되는 시점(제주도에서는 2030년으로 계획)까지 중첩되는 기간 제주도의 교통대란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큰 난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 제주도의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대체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정책의 목표가 허황된 꿈인지, 실현 가능한지 가늠해보고자 시작했다.
국내외 전기차 시장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고, 시장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당국, 산업생태계를 주도하는 민간업계, 전기차를 운행하는 소비자와 향후 구매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까지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로 정해 추진해야 할지 인식전환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특별취재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