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황선미 글·김용철 그림 '칠성이'

[책세상]황선미 글·김용철 그림 '칠성이'
두려움 뒤 또 다른 두려움 기다리는 삶
  • 입력 : 2017. 08.04(금)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도축장 공포 기억하는 칡소
가슴 한쪽에 슬픔 묻은 노인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메시지


4년 전 도축장. 여기 끌려온 소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중에는 갓 두 살이 된 칡소도 끼어 있었다. 우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칡소의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끌려왔지만 칡소는 금방 깨달았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칡소가 자기에게 닥친 운명에 대들기라도 하듯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로 땅을 헤집어대고 있을때, 한 노인이 겁에 질린 칡소와 눈이 마주쳤다.

황 영감. 사람들은 영감을 황 우주라고 불렀다. 싸움소의 주인. 인생의 절반 이상을 소싸움에 건 외로운 노인. 가족과도 같던 최고의 싸움소 범소를 사고로 가슴 한쪽에 묻고 이날 새로운 동지이자 식구인 칡소를 만났다.

마음 깊은 곳에 도축장의 두려움을 새긴 칠성이, 사랑하던 범소를 묻은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 황 영감. 둘은 서로 다른 삶의 냉혹함을 경험했고, 이후 이들이 펼쳐가는 이야기에서도 그전 경험한 삶의 기억은 열뜬 고통처럼 둘을 따라붙는다.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마당을 나온 암탉', 그 정수를 잇는 황선미 작가의 신작 '칠성이'.

황 작가의 주요 특질로 언급되곤 하는 마치 눈앞에 살아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만 같은 치밀한 형상화는 이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출렁거리는 경기장, 수소들의 술렁거림, 한낮의 모래판과 불거지는 근육. 더하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다 이해하지는 못하는 말 없는 동물의 눈과, 그를 바라보는 인간 황 영감의 다층적인 감정의 겹이 깊고 굵직하게 다가온다. 김용철 화가의 연필 드로잉은 이 문학적 형상화를 더욱 생생하고 밀도있게 끌어올린다. 슬픔과 두려움, 인물간의 감정의 거리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수소의 힘찬 움직임은 작품을 감상하는 맛을 더하고 있다.

생이 끊어지는 도축장과 싸움소라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단단하게 발딛고 선 수소 칠성이. 그리고 그 수소의 옆에 선 황 영감의 진한 인간애는 삶을 바라보는 겹겹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하나의 두려움을 딛더라도, 또 하나의 두려움이 들어오는 자리. 삶이 이와 같을 때, 어디에 서서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까? 이 작품을 통해 뜨겁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계절. 1만6000원. 김현석 기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21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