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이 가을에 두려운 것들

[한라칼럼]이 가을에 두려운 것들
  • 입력 : 2017. 10.24(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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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툭 치면 깨질 듯 한 푸른 하늘과 내리쬐는 뜨겁지 않은 햇살, 그 사이로 부는 바람 그리고 가끔씩 내리는 가을비는 그토록 뜨겁게 달구던 대지를 식히며 무지개 가운데 있던 파란색을 노랑과 주황 그리고 빨간색을 산과 들로 내려놓았다. 감귤과 감과 단풍나무, 도라지와 작약 그리고 붉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빨갛게 돌담을 감싸는 담쟁이도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귀뚜라미까지 끼워 넣으면 가을은 완연한 모습을 갖춘다.

계절은 평등하게 찾아온 것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나 과연 사회는 평등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뭘까. 지난여름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 한 마리. 털이 빠진 자리엔 진드기가 잔뜩 달라붙었고, 갈비뼈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주변을 맴돌자 쫓을 요량으로 돌멩이를 던졌으나 물끄러미 쳐다보다 뜨거운 여름 햇빛도, 돌멩이도 두렵지 않은 듯 그 자리에 앉고 말았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물이라도 줘서 보내야겠다는 하찮은 마음에 살펴봤더니 발톱이 빠지고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비루한 암캐였다. 우리가 먹다가 남은 밥과 물은 마치 마파람에 게눈 감춘다는 표현에 걸맞게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사료와 물, 가끔 먹다 남은 뼈다귀 그리고 진드기가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목걸이를 매달아 줬을 뿐인데 지금까지도 떠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두 달 넘게 머물고 있다.

까맣던 피부에 하얀 털이 돋아나고 대충 치료해준 상처는 새살이 돋아나 지금은 개로서의 모습이 드러냈다. 인간에게 버려진 개라고 할지라도 약간의 기력을 회복하면서 생물적 본능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발정 났다. 그 때문에 수캐들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목줄을 하고 수캐의 접근을 막고 있다. 부지깽이도 함께 일해야 하는 바쁜 시기에 만일 새끼를 낳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긴 목줄을 하고 밭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다가온 덩치 큰 수캐 때문에 놀라기 일쑤다. 비가 올 때도, 음습한 바람이 얕게 내려앉은 밤에도 수캐들이 수시로 찾아와 유기견을 가둔 창고 주변을 맴돌다가 본능을 이기지 못해 울어댔던 흔적은 아침 밭에 가보면 얼마나 살벌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러한 수캐의 감시야 암캐의 발정기라는 동물적 본능이 끝나면 서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평시로 돌아갈 것이다. 이게 동물의 세계다.

허나 우리가 살고 있었던 지난 세계도 이와 다를 바 없는 일이 펼쳐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짐작이야 했지만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지난날들을 활화산 같은 마음을 모아 그 냉기를 녹여 새로운 세계로 들어와 보니 음침한 곳에서 우리 모두를 들여다보았다. 비정한 정치권력은 남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도닥거렸다는 이유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글을 쓰는 이 등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음침하게 들여다 봤다. 이들뿐이 아닐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을 터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든,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든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앎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시간은 모든 것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아도 본색을 드러나게 한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우리처럼 부득이 한 날을 제외하고 밭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농부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발정 난 암캐가 수태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위를 감시하며 겨울을 준비해야겠다.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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