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40)]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40)고산식물이 사는 방식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40)]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40)고산식물이 사는 방식
만개한 꽃들 재빨리 수정·씨앗 키워 온전히 성숙…
  • 입력 : 2017. 12.24(일) 19:00
  •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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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산맥 알락 하이르한산의 고산초원, 여름이 짧은 이곳은 7월 하순 일제히 꽃을 피운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종자상태로 혹한 계절 넘기는 고산식물
체온·수분 유지하기 위해 피부에 털 많아
다육화·독특한 성분 등… 생명 유지 전략

김찬수 박사

한여름이지만 해발 2300m부터는 잔설이 보인다. 이 눈은 녹아서 어느 곳에서는 꽃밭을 적시면서, 또 어느 곳에서는 땅속을 스며들었다가 샘으로 솟아난다. 그리곤 다시 하나둘 모여 점차 큰 시내를 흐르다가 거대한 강을 이루는 것이다. 7, 8월 두 달 동안은 이 높은 혹한의 산꼭대기도 이처럼 꽃으로 뒤덮인다.

고산식물은 어떻게든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쉬운 방식은 종자상태로 혹한의 계절을 넘기는 것이다. 열대지방에서보다는 온대지방에서, 온대지방에서보다는 한대지방 식물들이 씨앗을 많이 남기고 형태도 단단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식물들은 눈이 녹고 대지가 따뜻해지면 일시에 발아해 꽃을 피운다.

그 다음으로는 땅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다. 이 종들도 눈이 녹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서서히 꿈틀거리다가 일시에 꽃을 피우고 곤충을 받아들여 자손을 남길 준비를 하게 된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몸에 털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피부에 털이 많게 되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라도 수분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다육화해 수분을 유지하고 독특한 성분을 생성하여 빙점을 낮추는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비단망초

얼음양지꽃

재양귀비

넉줄돌꽃

7월 하순, 알락 하이르한산 정상은 꽃들로 넘쳐난다. 이 꽃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재빨리 수정해 씨앗을 키우고 온전하게 성숙시켜 내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피는 것이다.

비단망초(에리게론 에리오칼릭스, Erigeron eriocalyx), 정상의 바위틈에 피었다. 이 속에 속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는 망초, 개망초 같은 식물들이 지천에 자란다. 농부들에게는 아주 성가신 존재일 뿐 아니라 너무나 흔해서 그런지 그 꽃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생하는 식물로는 백두산에 자라는 민망초와 구름국화가 있다. 에리오칼릭스는 그리스어로 '꽃받침이 비단으로 싸여 있는’ 뜻을 갖는다. 이런 명칭을 고려해 비단망초로 이름을 붙였다. 이 꽃은 아직 꽃받침이 막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잡초로 자라는 같은 속의 망초에 비하면 앙증맞을 정도로 예쁜 꽃이다. 이곳 알타이를 비롯해서 러시아(시베리아), 중국(네이멍구, 신장의 해발 2400~3600m), 카자흐스탄, 유럽에도 분포한다. 수목한계선보다 높은 고산에 자라는 식물이다.

얼음양지꽃(포텐틸라 알기두스, Potentilla algidus), 얼마나 추운데서 자라길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알기두스는 '얼음같이 차가운' 또는 '얼어붙은' 의미를 갖는다. 포텐틸라는 양지꽃을 나타내므로 우리말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이 식물은 북아시아에서 히말라야, 유럽에 자란다. 중국의 경우 신장의 해발 2200~4800m에 자란다. 유럽에도 분포한다고 한다. 줄기, 잎, 꽃받침 모든 곳에 하얀 솜털 같은 털이 덮여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한라산정상에 자라는 제주양지꽃과 돌양지꽃 등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재양귀비(파파버 카네스켄스, Papaver canescens), 양귀비속 식물이다. 카네스켄스가 '잿빛을 띠는’, 또는 '회색으로 변하는’ 뜻을 가지므로 이렇게 우리말 이름을 붙인다. 중국에서도 알타이에 인접한 신장의 해발 1500~3500m의 고산에 자란다. 그 외로는 러시아에 자란다. 사진에 나타난 식물체를 보면 온몸을 털로 감쌌을 뿐 아니라 그 털의 색깔이 잿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넉줄돌꽃(로디올라 쿼드리피다, Rhodiola quadrifida)은 백두산에 자라는 좁은잎돌꽃과 북한 여러 산악에 자라는 돌꽃과 같은 속이다. 쿼드리피다가 '잎이 네 줄로 돌려나는' 뜻이므로 넉줄돌꽃으로 이름 지었다. 선인장처럼 다육식물이다. 가뭄과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인삼처럼 굵은 뿌리에서 해마다 줄기가 나온다. 줄기에 달린 잎은 단면이 삼각형모양이다. 중국 신장의 1300~2700m의 고산에 자라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도 자란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알락 하이르한산이여 안녕!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 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 한라산에 자라는 종의 기원을 찾아 나선 탐사기록이다. 알타이는 알타이산맥의 남단에 위치해 이 산맥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알타이시까지만 해도 한라산에서 4500㎞나 떨어진 먼 곳이다.

우리는 한라산 또는 제주도에 자라는 많은 종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했다. 기록으로만 보더라도 캄차카, 시베리아, 알타이, 중앙아시아, 티베트 등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먼 곳에서 온 식물이 한라산엔 많다는데 그 현장은 어떤 곳인가? 과연 그 곳에 자라는 식물들이 한라산에 왔나? 어떤 진화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종들이 한라산으로 이주해 온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한라산에 자라는 많은 종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제주도 내에서 제주도의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밖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훨씬 객관적 시각으로 제주도의 자연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다.

이러한 관점으로 머나먼 알타이를 탐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중앙아시아의 메마르고 뜨겁고 추운 곳에서 제주도의 해안에 자라는 많은 식물들이 여기서 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바닷가 식물들은 그들의 고향인 고비사막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 수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어디에서 분화해서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라산 정상에 자라는 많은 종들 역시 조상들은 알타이에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최종 목표지점으로 삼은 알락 하이르한산의 정상, 해발 3739m의 고지대에 자라는 많은 종들도 한라산에 자라는 여러 종들과 혈연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라산의 종들은 분산분포, 분단분포, 격리분포, 적응의 산물로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해 자매종이 된 경우 등의 방식으로 알타이, 중국 동북지방, 백두대간, 한라산의 경로를 따라 존재하게 됐다는 것이다.

모든 종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디선가 조상이 있고 그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함께 해 준 열렬한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에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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