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53)]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⑬사막의 도시 호브드의 포플러나무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53)]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⑬사막의 도시 호브드의 포플러나무
사막 한 가운데 형성된 호브드시에 넘쳐나는 활기
  • 입력 : 2018. 04.01(일) 20:00
  •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호브드시 광장의 갈단 보식투 칸의 동상.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김찬수 박사

거리에서 만난 호브드시 사람들은 활기가 넘쳤다. 거리는 깨끗했다. 덥고 수시로 모래폭풍이 눈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먼지를 일으키는 사막의 도시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시 외곽에는 여러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있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다소 몽골 전통의 게르, 흙벽돌집들이 보였다.

시가지의 중심부로 들어서자 점점 고층아파트들이 보였다. 군데군데 어느 정도 공간이 넓은 곳은 소공원으로 조성했는데, 예술적으로 디자인한 가로등, 몽골전통의 다양한 풍물들을 조각품으로 만들어 세워 놓은 것들이 보인다. 그 중에는 전통악기인 마두금, 우유를 끓이고 보관하는 주전자, 전통의상의 하나인 신발과 같은 것들을 마치 큰 건축물처럼 세워 놓았다.

호브드시 거리.

시내 중심부에는 시청, 학교, 은행, 극장 등이 밀집해 있다. 우리가 도착한 때가 오후 5시가 넘어 다소 한가한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은 각종 의류를 비롯한 공산품과 인근에서 생산했음직한 농산물들을 사고파느라 왁자지껄하다. 어느 농산물가게에는 수박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곳의 수박은 줄무늬가 뚜렷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보다는 다소 검은 색이 강했다. 호브드는 이 일대에서 수박 맛이 유명하다. 중앙아시아, 특히 실크로드로 통칭되고 있는 도시들에서는 이 수박이 인기 있는 농산물의 하나로 생산과 유통이 활발하다.

극장 맞은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유럽식 건물이다. 창은 넓고, 극장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커튼이 우아하게 드리워져 있다. 4인용 식탁이 20개 정도가 있다. 군데군데 젊은이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좀 더위에 지친 여행객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극장에 왔다가 들르기엔 좋은 분위기다.

양고기찜, 계란밥 등 각자가 취향대로 주문했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신선한 바람을 쐴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다.

호브드시의 가로수.

교통신호등이 있는 왕복 4차선의 교차로, 식당의 맞은편은 극장이다. 그 맞은편은 시청이 자리 잡고 있다. 시청건물은 좌우 1자형으로 긴 4층 건물인데 웅장한 느낌을 준다. 광장은 사각형으로 한 변이 200여m로 보인다. 그 둘레엔 포플러나무를 심었다.

이 도시는 사막의 한 가운데 있다. 알타이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모든 곳이 사막이었다. 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다. 이 호브드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도 나무는 볼 수 없다. 그런 사막의 도시답지 않게 이 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랄 수 있는 건 왜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사람들은 나무에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시 전체 심은 나무들을 보면 이미 늙어서 쇠약한 나무, 한창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 이제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나무, 골고루 볼 수 있다. 모두 부얀트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주고 있는 것이다.

잔털사시나무.

몽골에 자라고 있는 포플러나무는 다섯 종이다. 갈래사시나무(포플루스 디버시폴리아, Populus diversifolia), 떨림사시나무(포플루스 트레물라, Populus tremula), 월계수사시나무(푸플루스 라우리폴리아, Populus laurifolia), 잔털사시나무(포프루스 필로사, Populus pilosa), 향기사시나무(포플루스 수아베올렌스, Populus suaveolens) 등이다. 그런데 여기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그 중 어느 종일까?

포플러나무는 사시나무속(Populus)이다. 원래 포플루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라는', '광장에 자라는'의 뜻이다. 빠르게 자라고 크게 자라 그늘을 만들기에 제격인데다 목재의 쓰임새도 많아서 널리 퍼졌다. 그러면서 많은 품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곳에 심은 나무들도 어느 종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다만 잎자루에 나 있는 털로 보아 잔털사시나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그냥 포플러나무로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신이 간청한다고 해도…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사 앞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인물 동상이다. 갈단 보식투 칸(Galdan Boshogtu Khan, 1644~1697)이다. 왜 그가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일까?

갈단은 준가르 칸국의 준가르-오이라트 칸이었다. 준가르 칸국을 건국한 칸인 에르데니 바투르의 넷째 아들이면서 15세기 서 몽골을 통일한 북원의 강력한 오이라트 칸인 에센 타이시 칸의 후손이기도 하다. 7세 때 티베트의 라싸에 유학하여 불교교리, 철학, 점성술, 천문, 의학, 약학 등을 배웠다. 갈단은 20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여 칸에 오르는데 몽골사상 최고의 지식을 가진 칸으로 손꼽힌다. 이 호브드시는 바로 이 갈단 칸이 건설했다.

이곳은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지만 역사상 거의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17세기 몽골은 바로 이 알타이 산을 경계로 서부의 오이라트, 동부의 할흐몽골, 고비 남쪽의 내몽골로 분리되었다. 이들은 초원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 후금과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북원시대에는 오이라트가 몽골고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에센 타이시가 사망하면서 오이라트는 와해되고 17세기 이후 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북원이란 1368년 원의 순제 토곤 테무르가 북경에서 내몽골로 옮긴 이후를 가리킨다. 이 북원이란 국호를 처음 사용하여 불러준 나라는 고려라고 한다.

북원은 1636년 후금에 복속되었다가 1640년 러시아와 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몽골 각부와 오이라트 연합을 결성하였다. 1688년 바로 이 동상의 주인공 갈단 칸이 몽골 할흐부를 공격하여 많은 영토를 회복하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게 된다. 갈단이 죽고 1717년 이후 1912년 몽골이 회복할 때까지 거의 200년간을 이 지역은 청의 지배하에 있었다.

중앙아시아를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 머나먼 동화의 나라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100년이나 이들에게 유린당한 적이 있다.

동상의 기단에 새겨진 갈단의 얘기 '신이 간청한다 해도 한 평의 땅도 내주지 마라.'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66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