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산문집 낸 로천 김대규

[저자와 함께] 산문집 낸 로천 김대규
“비우고 또 비우면 그 자리에 자유”
  • 입력 : 2019. 08.0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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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천 김대규 선생이 그림 그리고 소리하고 연주하며 뜀박질하는 '수행'의 일상을 담은 산문집을 냈다.

직업군인서 화가·소리꾼으로
10여년 전 낯선 서귀포에 둥지

마지막 이주로 한라산에 움막


봄날이 깊어지면 제주 사려니숲길에서 탐방객들을 위해 달마도를 그려주던 사람. 묶은 머리에 하얀 수염을 기른 범상치 않은 인상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형형한 눈빛'을 먼저 떠올린다.

로천(鷺泉)이란 호를 쓰는 김대규 선생이다. 사군자, 문인화, 수묵산수화를 익힌 그는 그동안 스물두차례 국내외 초대전을 가졌다.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이수자로 2009년 서귀포에서 판소리 다섯마당 눈대목을 선보였고 이듬해엔 제주아트센터에서 수궁가를 완창했다.

그림 그리고, 소리하고, 북치고, 춤추며, 연주하는 그가 '로에피소드'란 제목의 산문집을 냈다. "기억해 보면 후회하고, 반성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격려해 뉴 스타트를 하게 된 여정을 사로잡힌 영혼, 너릿재 소년, 늙은이의 기억, 예술보다 고달픈 세상살이, 명상을 만나다 등으로 나눠 실었다.

전남 광주가 고향인 그는 맘껏 먹는 것이 소원이었고 남들 만큼 입는 것이 바람이었던 소년기를 보냈다. 학창시절의 가난은 그를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고 내의를 얻어입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인으로 이끌었다. 현역 장교 11년, 국방부 행정 5급 사무관 16년 등 청장년 27년을 공직생활에 바쳤다. 곡절 많은 군 생활을 어렵사리 마쳤을 때 그는 다시 살아남기 위해, 존재감을 갖기 위해 국악과 한국화를 택했다. 만학도가 되어 바지런히 배움을 좇았고 10년간 소요산에 칩거하며 잠자고 운동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를 그림, 서예, 판소리, 고법 등을 익히는 데 썼다.

소요산을 나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귀포에 둥지를 틀었던 그는 지금 한라산 깊은 계곡 작은 움막에서 지낸다. 매일 아침 산악 마라톤을 하고 명상수행도 거르지 않는다. 겨울이면 '인생의 마지막 장과 내생을 여는 곳'인 미얀마 파욱의 수행처로 향한다. 하루하루가 정진하는 삶이다.

로천은 노모의 말년에 빗대 오롯이 혼자있는 거처를 '저만의 요양원'이라고 표현했지만 '입산놀음'의 행복을 숨기지 않았다. 서귀포 정착 10년이던 2014년, 생애 마지막 이주이길 바라며 한라산에 든 그는 "인정도 끊고 세속도 버리고 비우고 또 비우고 홀로 머묾, 그러면 그 빈자리에 자연과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엄. 1만8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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