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래도 고맙다

[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래도 고맙다
  • 입력 : 2020. 12.30(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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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이 다 지났다. 코로나에 주눅들어 사라진 365일, 꽁꽁 얼어붙은 경제상황이 세밑 한파보다 차갑고 모질다. 내년은 또 어떻게 견디나 어떻게 버텨야 하나. 중소기업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1%로 전망했다. 코로나 위기 속 각국의 마이너스 성장을 전제한다면 한국은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의 올해 매출은 볼 것이 없다. 예년에 비해 노력은 더했는데 결과는 시원치가 않다. 물론 누구에게나 최대 이슈 공식적 핑곗거리인 전대미문의 복병 코로나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임직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장의 기본 역할을 감안한다면 솔직히 아쉬움이 많다. 아니 부끄러운 한 해였다 할 것이다. 하늘길이 막히고 사망자가 행렬을 이루는 팬데믹에서도 먹거리를 찾아 전력투구해야 하는 게 기업의 생리가 아니던가. 매 순간 스스로를 무겁게 짓누르며 아침부터 밤까지 뛰었지만 평가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 비즈니스 세계,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에 스스로를 책망할 뿐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면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해야 하는 이 시점, 나는 자신에게 들었던 회초리를 거두려 한다. 그리고 두려움의 긴 터널에 갇혔던 스스로에게 소소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만큼 해낸 것도 다행이라고,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고.

사실 나는 경자년에 기대 아닌 기대가 있었다. 내 이름이 경자인 탓에 올해는 아마도 대박이 날 거라고 이웃들이 놀려댔었다. 경자년에 경자가 못할게 무엇이냐며 응원의 박수도 받았다. 나는 손사래 치며 민망한 척했지만 그들의 놀림에 그들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정말로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감도 송송 솟았다. 1년 내내 쉴 새 없이 벅차고 어려운 일들이 생겨났지만 은연중 잘 될 거 같은 희망이 가슴 밑둥에서 피어올랐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보니 어느새 1년은 훌쩍 가버리고 성과도 없는 한 해가 며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대박 날 거라는 2020년 그 경자년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새삼 고마움이 앞선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 아픈데 없이 건강하지 않았던가. 모든 직원들도 무탈하지 않았는가. 마지막 남은 12월 달력에 그동안 이룬 게 뭐냐고 자책하며 움츠렸었는데 그래도 한해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이름 덕분은 아닌가. 회갑을 지내고도 맘속에 욕심이 들어앉아 있나보다. 무모한 기대를 가졌나 보다. 긴긴 시간 개인적 선택과 상관없이 의료방역에 헌신하는 이들, 어려운 살림살이에 흔쾌히 기부에 나서는 이웃들의 넉넉함을 생각하니 참으로 면목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경자년을 나는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또다시 주어지는 새로운 1년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예측불가의 병마에 스스로를 챙김으로, 고마운 이웃들은 무사안녕의 기원으로, 그리고 고단한 사회여건은 불평보다 연륜의 기다림으로, 그러다 보면 코로나19도 멀어지겠지. 경제상황은 좀 나아지겠지. 그리고 벗들과 마주하며 웃는 날도 이내 찾아오겠지. 그래도 고맙다. <허경자 제주EV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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