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식의 문연路에서] 느림의 미학

[양영식의 문연路에서] 느림의 미학
자동차 위주 도로를 넘어
  • 입력 : 2021. 06.23(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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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대중교통 중심의
느리지만 인간다운 사회로


우리는 빠른 것이 경쟁력으로 여겨지는 시대,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5G 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점 빠른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고, 디지털경제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명의 편리함과 물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빠른 것이 우선인 것에 대한 이견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누구에겐가 쫓기듯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 '속도'와 '경쟁'이라는 중압감에 밀려 메마른 현실과 일상 속에서 고통받고, 영혼은 지치고 피폐되어 간다.

월말이나 연말이면 늘 "아니 벌써",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지?"하는 생각을 반복해서 갖게 되고 바쁜 삶속에서도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며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하지만 속도와 편리함에 매몰되어 숨 가쁘게 앞만 보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자성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빡빡한 일정속에서 충실하게 사노라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반평생 열심히 직장을 다녔노라 자부하지만, 퇴직 후에 밀려드는 그 공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피에르 쌍소는 '느림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느림의 미학'이란 현대인의 바쁜 일상을 좀 느리고 여유있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없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때로는 느긋하게 기다리며 생각하는 삶의 미학을 누리는 여유를 가져 보았으면 한다.

마음의 시계를 늦추면 내가 누구인지를 느낄 수 있게 되고, 밤에 소곤거리는 별들과 손짓하며 유혹하는 한라산도 보이게 된다. 새벽 환경미화원의 부지런함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출근길 버스 기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사실 나는 10년 전에 과감히 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선택했다. 물론 먼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동네 아이들이 나를 자전거 아저씨라 불러 준다. 자전거를 타면서 이웃을 만나고 자연과 교감하다 보니 마음의 풍요로움과 함께 얻어지는 것이 많아 자동차를 포기한 기회비용은 훨씬 작아 보인다.

제주 돌담과 야생화, 바람과 햇살, 매일 저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붉은 노을, 정겨운 사람들 모두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수 있는 느림이 주는 선물들이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세상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으니 느리지만 깊이가 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상념이 없어지고 평온이 찾아 온다. 느림의 여유와 제주 자연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이용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빠름이 대세인 이 시대에 느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물섬 제주에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는 보행환경 조성과 자전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지속 가능한 경쟁력있는 미래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자동차 중심에서 대중교통과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가 돼야 한다. 자동차 개발과 보급에 선도적이었던 유럽도시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에는 자동차를 버리고 걷기 편한 도시, 자전거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것처럼 느림이 빠름을 이기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양영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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