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책세상]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박완서 글, 이성표 그림 '시를 읽는다'
  • 입력 : 2022. 02.0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2010년에 나온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박완서(1931~2011) 작가는 이런 글을 적었다.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읽었다. 같은 산문집에 실린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에는 그가 시를 읽는 이유가 들어있다. 시집을 두고 "좋은 말의 보고"라고 했던 작가는 "심심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고 했었다.

박완서 작가 타계 11주기를 추모하며 출간된 '시를 읽는다'는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에 담긴 명문장이 펼쳐지는 시그림책이다. 40년 넘게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성표 작가가 간결하고 맑은 그림으로 시와 같은 문장을 화면 위에 풀어놓았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 작가가 그랬듯, 새해엔 시 한 편을 차분히 마음에 담아보자. 작가정신. 1만3000원.

진선희기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88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