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글로벌 아트페어라 불리는 프리즈가 서울을 아시아 첫 개최지로 선정하자마자 미술계는 떠들썩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은 홍콩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싱가포르, 상하이, 서울이 차기를 노리는 상태였다. 프리즈의 입성으로 단숨에 서울이 불안정한 홍콩의 정세를 대체할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외 주요 갤러리들이 분점을 내는 곳도 늘 홍콩이었는데, 이제는 서울로 옮겨져 가는 중이다. 한국의 갤러리들이 아시아 브랜치를 낼만한 쟁쟁한 해외갤러리들과 같은 도시에서 나란히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그에 더해 한국미술시장은 근 2년간 엄청난 활기를 띠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 컬렉터들의 수가 늘었다. 그들이 한국미술시장을 활기로 이끌었던 흐름도 하반기에 주춤하리란 전망이 많았지만, 미술시장의 호황불황을 떠나 현재 프리즈 자체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다.
한국미술시장을 대표하는 국내 최고 아트마켓인 키아프가 프리즈와 개최기간을 맞추고 장소도 같은 컨벤션 센터를 쓰면서 잘 짜인 협업 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페어와 국내에서 가장 큰 페어가 9월 1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는 짧은 기간 동시에 열렸기 때문에, 한국 미술계에는 말 그대로 소동이 벌어졌다.
미술계 vvip들이 대거 유입되는 8월 30일부터 그들이 체류하는 기간 내내 갤러리들이 주최하는 전시 오프닝 파티며 프리즈를 염두에 둔 에프터 파티 등이 연달아 열렸다. 그들의 방문에 맞춰 작가들 스튜디오비짓 일정을 짜고, 그 작업실 방문을 준비하는 작가들도 덩달아 분주했다. 작은 규모든 큰 규모든, 전시장이든 클럽이든, 서울은 매일매일 들를 곳과 만날 사람들로 들썩였다. 프리즈를 계기삼아 아주 자연스럽게 이태원과 강남 일부, 사간동 일대는 미술주간, 즉 아트위크가 된 셈이다. 이쯤되면 프리즈와 키아프의 판매실적은 중요하지 않다. 전세계 아트피플이 서울을 경유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서울이 홍콩처럼, 프리즈 시즌에 가야하는 미술계의 하나의 중요 도시가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프리즈를 위해 서울을 찾은 이들이 단지 서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때맞춰 열리는 부산비엔날레 오픈을 찾는 이들도 있고, 평소 친분이 있고 궁금했던 사립미술관을 찾으러 제주에 오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이 서울을 방문한 길에 제주를 찾아 도립미술관과 미팅을 하기도 했다.
성지순례하듯 매년 아트바젤 홍콩을 떠나고, 2년마다 베니스비엔날레를 가는 티켓을 끊으며, 어떻게 해야 다른 이들이 성지순례하듯 미술을 즐기기 위해 제주를 찾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제주비엔날레가 그 초석을 깔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갖는다. 서울은 프리즈를 데리고 왔지만, 제주는 무엇을 가지고 올 수 있을까. 물론 바젤이나 프리즈보다 더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서 역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방법도 있다.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