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18세기 이래 전지구적으로 번져나간 산업화와 제국주의 열풍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전지화라는 유산을 남겼다. 20세기 중반기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존재했지만 진영 간 경쟁에서 패배 후 사라져갔다. 자유주의와 국가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변신해온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동시대와 미래의 경제를 굴려나가는 절대상수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경제체제의 변동에 따라 예술 또한 그 본질과 속성을 변화시켜 왔다. 단언하자면 전근대시대의 예술이 주문생산이라면, 근대시대의 예술은 자율생산이다. '선주문 후생산'에서 '선생산 후판매'로 바뀐 것이다.
전근대시대의 예술생산은 대부분 누군가의 요청이나 주문에 따라 이뤄졌다. 근대시대 이후의 예술생산은 자율생산이다. 예술가 스스로의 의제와 방법에 따른 작품 생산을 추구하고 이를 매개하는 시장이 수집가나 관객에게 작품이나 티켓을 판매하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자리잡았다. 그 후 시장 자체에 초점을 맞춘 '시장미술'이 탄생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이니 이제 미술은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할 시점에 도달했다.
전지구적인 명성의 미술브랜드가 서울에 다녀갔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키아프서울 2022'(2∼6일)와 '프리즈서울 2022'(2∼5일)가 열렸다. 아트페어기획사 프리즈와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한 두 행사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서울이라는 도시가 국제적 규모의 예술경제를 어떻게 열어나갈 것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첫 무대였다. 이미 아트바젤홍콩이 국제적 미술시장의 아시아 거점으로 주목받은 바 있지만, 중국의 민주주의 퇴조로 한 걸음 물러서는 형국에서 이번 행사는 동아시아 미술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세계적인 인지도와 재력을 가진 화랑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미술시장 각축 장이 열렸으니 한국미술계로서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4-5일간의 행사 기간에 7만명이 다녀감으로써 관객 호응도에서 좋은 성적을 남겼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다고 하니 시장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산 브랜드인 키아프로만 봐도 예년의 650억원 매출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고 하니 애초의 우려대로 외국 브랜드에 밀려 토종 브랜드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그냥 기우에 그친 셈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나, 아직 천민자본주의 수준이라는 비판이 많다. 시장합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경제에 편입한 한국에서 미술시장만 국수주의 태도를 취할 일이 아니다. 시장의 대안은 충분한 시장합리성의 기반 위에서 나온다. 키아프서울이 남긴 과제는 한국 미술시장의 합리적 기반 구축이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 비해 아직 왜소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미술의 위상 문제는 한국미술의 시장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구두·문자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지구와 소통하는 K-컬쳐에 비해 시각언어인 K-아트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되돌아볼 일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