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길(道) 위에서 가끔 망상이 아른거린다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길(道) 위에서 가끔 망상이 아른거린다
  • 입력 : 2022. 12.14(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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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한자어 '도(道)'는 '다니는 길'의 뜻 외에 '이치, 도리', '근본, 근원, 우주의 본체', '작용, 기능, 묘용' 그리고 '방법' 등의 많은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말의 '길'도 한자어 '도(道)'의 뜻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의미들을 표현해 일상에서 널리 소통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한 의미들이 중심 의미인 '다니는 길'에서부터 연상된다는 사실이다.

'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비단길'은 기원전 한무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동서 교역로로 자리를 잡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와 정치가 배경이 되어 형성된 독특한 길이지만 지금도 세계인들이 찾고 있다. '비단길'보다 먼저 왕래했다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를 잇는 '차마고도'가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길게 연결된 7번 국도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모두 '다니는 길'의 의미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종교와 닿아있거나 이념과 관련이 된다면 길은 또 대부분 이 전쟁으로 해서 형성됐다. 길은 문명과 문화 접촉의 촉매가 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군사의 이동과 이에 따른 보급로의 역할을 담당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2차대전 후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이룰 수 있었지만 부적절한 국경 문제로 크고 작은 충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들이 전쟁 수단으로 사용한 길에 의해 왜곡된 분할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다니는 길은 육로만이 아니다. 바다는 물론이고 하늘까지 촘촘한 그물로 연결이 돼있다. 제주 강정항도 바다를 통한 길의 확장인 셈이고 지금 제주도민들에게 갈등인 제주 제2공항도 하늘길을 연결해나가는 것에 대한 문제다. 길이 '작용, 기능, 묘용'의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면야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치, 도리', '근본, 근원, 우주의 본체'와 닿아있다면 가치의 문제가 아닌가. 이 문제가 어디 쉬운가.

서울 개포동과 구룡마을은 양재대로에 의해 북과 남으로 나뉘어 있는데 길에 의해 두 마을은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삶의 양상도 몹시 이질적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남쪽은 두려움을 느끼며 증오를 키울 수도 있고 북쪽은 무시와 멸시로 단절을 꾀할 수도 있다. 며칠 전 두조로(두모와 조수를 잇는) 수장동 근처에서 노루 한 마리가 찻길로 뛰어들어서 사고를 당했다. 제주의 길은 이미 자연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삶의 길은 가치 추구의 과정이므로 방향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다함이 없다. 그럼에도 가치의 고저와 장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날마다의 판단에 의해 낮고 짧은 것들은 쉽게 잊히거나 소외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택과 판단이다. 방향성을 위해 단절을 감수한다면 결핍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가치의 역사성을 생각해 볼 수밖에. 그런데 제주의 '올레길'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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