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의 특별기고] 중국 태산(泰山)과 탐라의 역사 인연

[박찬식의 특별기고] 중국 태산(泰山)과 탐라의 역사 인연
  • 입력 : 2023. 03.27(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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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중국 당나라 역사서 '구당서'에는 "666년 태산에서 봉선제가 열렸다, 유인궤는 신라, 백제, 탐라, 왜국 등 4국의 추장들을 데리고 갔다. 당 고종이 매우 기뻐했다"고 기록돼 있다. 탐라가 왜국(일본)보다 앞선 서열로 기록된 점이 특이하다.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했다. 백제와 친교를 맺었던 탐라는 663년에 백제부흥운동의 부흥군을 도와서 왜국과 함께 참전했다. 8월에 전개된 백촌강 전투에서 탐라-왜국-백제 부흥군은 나-당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1000여 척의 배에 7만명 이상 병력이 투입된 전투였다. 중국 학계와 일본 학계 모두 동아시아 고대사의 명운을 가른 중요한 전쟁으로 보고 있다. 한국사 학계에서 백제부흥운동 정도로 보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이 전쟁의 중심에 작은 섬나라 탐라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 고종과 측천무후는 진시황, 한 무제 때에나 치러졌던 태산 봉선제를 거대하게 치르기 위해 공을 들였다. 봉선제는 중국의 제왕이 하늘과 땅에 왕의 즉위를 고하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는 제천의식으로서 태산에서 치러졌다. 사람들이 가장 높고 크며 만물이 생성되는 곳이라 생각한 태산에서 봉선제가 치러졌다.

당 고종의 봉선의례에는 신라, 백제, 탐라, 왜국, 고구려, 돌궐 등 동아시아 각국의 추장과 사신들이 참여했다. 당 고종은 백촌강전투 이후 주변 나라들을 참여시켜 자국 중심의 세계관과 국제질서를 과시하고자 했다. 666년의 태산 봉선제는 지금의 동북아시아 정상회담과 다를 바 없는 매우 중요한 정치외교적 이벤트였던 것이다. 정확히 666년 1월 1일부터 4일까지 성대하게 베풀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태산 제천의식에 탐라 사신들이 신라, 백제, 왜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회동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탐라는 백제와 가까우면서도 고구려, 신라뿐만 아니라 중국, 왜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백촌강 전투와 같이 중요한 전쟁에도 탐라는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며, 비록 패배했지만 당에 대한 외교력을 발휘해서 봉선제에도 초청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탐라가 한반도 삼국, 일본과 더불어 당당한 주역으로 등장했으며, 동아시아 질서에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참여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오영훈 지사 일행이 산둥반도를 시찰하고, 하이난섬 보아오포럼에 참석했다. 제주와 중국과의 교류 확대 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산둥반도는 우리나라와 제주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신라방과 장보고의 법화원 유적이 웨이하이에 있으며, 칭다오에서 가까운 곳에 봉선제가 치러진 태산이 있다. 탐라인들이 중국으로 갈 때 관문이 바로 산둥반도이다. 탐라 사신이 참석해 봉선제를 올렸던 다이묘 유적이 태산 남쪽 기슭에 남아있다. 1987년 태산은 이러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결합시킨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제주 방문단이 666년 태산 봉선의례에 참석한 탐라 역사를 거울삼아 제주-중국의 교류 길을 확 트고 오길 기대해 본다.<박찬식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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