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의 월요논단] 김만덕 마을 유산과 원도심 활용법

[김명범의 월요논단] 김만덕 마을 유산과 원도심 활용법
  • 입력 : 2023. 06.26(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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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얼마 전 건입동 주민들과 김유정 문학촌이 있는 춘천 실레마을을 다녀왔다. 강원도 산골에 묻힌 모양이 떡시루 같다 해서 붙여진 실레마을은 소설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곳곳에 김유정 간판들이 두 눈에 가득 찼다. 길, 기차역 이름부터 우체국, 농협지소 심지어 편의점, 식당 간판까지도 김유정 일색이었다. 외형적으로는 김유정 브랜드 하나로 먹고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작고 조그만 실레마을의 첫인상은 김유정 성지처럼 다가왔다.

전국에 이런 김유정 마을들은 많다. 10여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역사적 인물, 문인, 음악가, 유명 연예인 등을 앞세운 도시 마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난 지역 브랜드들은 전국적으로 대략 8000개가 넘을 정도다. 하지만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가 많다. 신드롬처럼 한 지역이 명소로 부각되면, 이를 따라서 모방만 했지, 창의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획일적 콘텐츠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거나 미래를 담아 내지 못한 채 적지 않은 예산만 낭비하고, 용도폐기 수순을 밟을까 해당 지자체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주에서도 1996년 서귀포 이중섭 거리가 조성된 이후 지역 브랜딩 사업이 본격화된다. 2007년 거상 김만덕이 살던 마을, 건입동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붕 없는 박물관 조성 사업이 추진됐다. 지붕 없는 마을의 축소판 건입 박물관(2010년)이 문을 열었고, 김만덕 객주터와 김만덕 기념관이 2015년 연달아 복원과 개관했다. 지역의 역사문화유산 발굴·재현과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주민들이 앞장섰다는 점과 마을 전체를 하나의 경험공간으로 확장시켜 통합 마케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당시로부터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김만덕 마을과 산지천을 끼고 있는 제주시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도시 쇠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슬럼화 속도 역시 가파르다. 원도심의 질적 변화를 도모할 발전 모델로 이끌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브랜드는 기획이 아니라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책당국이 간과했고, 뒷심도 부족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김만덕 마을 유산에 대한 통합 마케팅 관리 주체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관광객 니즈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체계성이 떨어진다. 아쉽게도 관광객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는 수동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김만덕 마을의 유산은 원도심 회생을 위한 지역 브랜딩의 유효한 콘텐츠다. 최근 다시금 건입동 주민들 주도로 술 익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통주 콘텐츠는 김만덕 정신을 계승코자 하는 자각된 주민 정체성에서 비롯됐다. 첫 사업으로 주민들 스스로 전통주를 빚고, 김만덕 객주터 시판을 준비하고 있다. 전입신고까지 하면서 전통주를 배우겠다는 주민도 나타날 정도다. 김만덕 마을의 리브랜딩 시도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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