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4)그 여름의 끝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4)그 여름의 끝
  • 입력 : 2023. 06.27(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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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삽화=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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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시에서 꽃 피는 일은 결국 시적 화자의 몸과 영혼에서 꽃 피는 것을 말한다.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자신에게 매달려 마당을 피로 덮는 것을 감수하는 '꽃'일 때, 그때야 나의 절망은 끝날 수 있다니. 그만한 절망이 살다 보면 장난처럼 끝나있다는 건 환각에 가깝지만, 어떤가. 사랑은 그렇게 해서 지독하게 쓰러지지 않는 절망을 딛고 탄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종류이니. 힘들었겠구나. 사람은 격렬하던 흐느낌이 잦아들고 맑게 가라앉으면 "장난처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되는구나. 그러나 일찍 진 꽃 하나. 제 명을 다하지 못했으니 다시 돌려달라는 절망은 또 누가 어떻게 가지고 살까. 그 절망 끝에 모월모일, 과연 무슨 꽃이 핀다 해도 여름이 이렇게도 짧은데. 그러니 그러니, 돌아온다 해도 다시 잃고 말 꽃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는 것. 내 미안한 사랑 나무 백일홍이 타올라 붉은 꽃송이가 불을 뿜을 때는 거기서 눈을 떼지 말 것. 그리고 딴짓을 하지 말 것.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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