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그 해 여름

[이소영의 건강&생활] 그 해 여름
  • 입력 : 2023. 12.13(수) 00:00  수정 : 2023. 12. 13(수) 13:52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1994년에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여태껏 가깝게 지내고 있는 그 시절 친구들과 옛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그 해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 말하곤 한다. 그때가 정말 그렇게 더웠었나 싶어 찾아보니 그 폭염은 최근까지도 기록이 깨지지 않았던, 몹시도 덥고 가물었던 해였다고 한다.

그 해에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다. 흐느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문 뒤에 숨어 엿들은 바로는 아버지의 간에 어마어마하게 큰 암이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 길로 서울의 큰 병원으로 떠나셨고 남은 어른들은 쉬쉬하며 아버지가 곧 죽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루아침에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 걱정스러웠고 불안했고 암담했다. 학교에 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여전히 나인 척하느라 힘들었다. 가끔 보는 어른들이 날 붙잡고 아버지 좀 어떠시냐, 씩씩해야 된다 같은 말들을 할 때면 잘 모른다고 얼버무리기도, 눈물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힘들어서, 어른들을 보면 도망 다니곤 했다.

대수술과 힘든 치료를 마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많이 쇠약 해져 있었다. 젊고 건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에 거동조차 힘들 정도였는데 그 더위는 얼마나 더 견디기 힘들었을까. 우리 집 형편 상 에어컨은 사치품이었는데 어디선가 오래된 중고 에어컨을 얻어와 안방에 설치해두고 잠깐 씩 트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기억하는 1994년의 여름이다.

그때,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유년기의 마지막 여름을 보낸 친구들이 이제는 당시 부모님 나이 또래가 되었고 아이들을 둔 엄마 아빠들이 됐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나는 온 세상이고, 온 힘을 다해 그 세상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지만 나 자신은 여전히 모르는 것, 걱정스러운 것 투성이인 채로 말이다.

모두의 삶이 슬픔 없이 평안하길 기도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내 배우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의 부모님이나 자녀일 수도 있다. 무사한 인생이라는 건 없다는 걸,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정해진 결말인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만큼 알면서도 여전히 두렵다. 두렵기 때문에, 잠시 주어진 평화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그럴 때면 이 시간이 영원 하기를, 부질없지만, 바라는 것이다.

1994년 6학년 친구들이 얼굴도 모르는 우리 아버지께 빨리 나으시라는 편지를 썼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모두가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슬픔을 나에게 나눠주어 당신의 슬픔이 조금 덜어질 수 있다면 부디 그래 주길 바란다. <이소영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브리검여성병원 정신과 교수>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23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