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3)솔동산 거리 지정 15년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3)솔동산 거리 지정 15년
제주 1호 '문화의 거리'에 머물고 싶은 공간·프로그램을
  • 입력 : 2024. 06.13(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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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조례 근거로 지정
서귀포수협 지점서 900m 구간
2011~2015년 최소 23억 투입
입구 대형 조형물·시설 공사 등
거리 공연·체험 행사 한때 활발
작가의 산책길 연계 활성화 모색

[한라일보] 제주도에서 지정한 1호 문화의 거리는 어디일까. 서귀포시 솔동산 문화의 거리가 그중 한 곳이다.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중섭거리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솔동산 지명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말이 전해진다. "서귀 3리에 있는 언덕길로 옛날에 소나무가 많았던 데서 연유한 이름"(오성찬의 '제주토속지명사전')이라거나 "서귀진 사장(射場)이 있던 곳으로 활을 쏘는 솔대가 세워진 데서 솔대동산이라고 했고 훗날 솔동산으로 부르게 되었다"(송산동문화홍보지 '송산의 바람')라고 한다. 솔동산 거리 상징 조형물인 '활궁'은 후자를 참고해 제작된 듯 하다. "아픈 과거의 역사를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활시위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다"는 작품이어서다.

서귀포수협 솔동산지점 인근 거리 초입에 높이 솟은 조형물이 시선을 모으지만 그 길로 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드문 것 같다. 남쪽으로 걸어가면 그 끝에 '이중섭 산책로'란 부제가 달린 '솔동산 문화의 거리' 글자 조형물이 눈에 들어오고 서귀포 앞바다와 어울려 서귀포항, 새섬, 새연교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조금 더 이동하면 천지연폭포에 닿지만 주말에도 거리를 오가는 도보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솔동산 거리 남쪽 끝에 '솔동산 문화의 거리'를 알리는 큼지막한 글자 조형물이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솔동산 거리에는 '생명의 나무' 등 갖가지 조형물이 곳곳에 놓여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문화예술 행사·축제 연 1회 이상 개최 권장·지원=2007년 제정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의 거리 조성 및 운영 조례'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문화 시설이 밀집되어 있거나 문화예술 행사와 축제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지역을 선정해 문화의 거리로 지정·공포한다고 했다. 2016년에는 조례를 개정해 문화의 거리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공고하고 토지주, 건물주, 입주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문화의 거리에선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예술 축제·행사를 연 1회 이상 치르며 문화예술 단체의 각종 공연, 전시, 문화예술 축제 등의 개최를 권장·지원한다고 했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는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그 거리의 건물주, 토지주, 입주자 등에 대해 시설 운영비 등으로 융자를 알선(융자금 대출 이자 보전 3% 이내)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었다.

제주도는 조례를 근거로 2009년 4월 28일 문화의 거리를 지정, 공고했다. 1150m의 제주시 삼성혈 거리(시점 일도2동 1032, 종점 이도1동 1437)와 900m의 서귀포시 솔동산 거리(시점 서귀동 580-3, 종점 서귀동 650-8)가 이날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현재 관련 조례에 의해 지정된 문화의 거리는 제주시 삼도2동(673m, 2019년 3월 20일)까지 합쳐 3곳이다.

솔동산 거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작가의 산책길 및 문화예술시장 운영·관리 조례'도 적용된다. 조례상 국내외 작가의 문화예술 창작 작품을 전시·판매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공연하거나 체험하는 시장인 '문화예술시장' 구역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산책길, 이중섭거리까지 아우르는 문화예술시장에서도 각종 행사를 연 1회 이상 열고 소요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솔동산 거리 시작점에 설치된 대형 조형물 '활궁'. 사진=진선희기자

▶솔동산 거리 활성화 별도 사업비 마련 안 돼=제주도는 2011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솔동산 거리 조성 사업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이 기간에만 23억 7000만 원(국비 11억 6000만 원)을 들여 인도 확장, 가로등 공사, 조형물 설치, 주민 쉼터, 소공원 조성 등이 진행됐다. 앞서 언급한 '활궁'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서귀포시에서 2013년 마련한 '서귀포 휴양예술 특구' 계획에는 옛 도심권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개발하는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대상지에 작가의 산책길, 이중섭거리, 솔동산 거리가 있었다.

2016년에는 솔동산 거리에 이야기를 입힌다며 송산서귀마을회와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가 함께 '솔동산 8경'을 만들었다. 방어 유적인 서귀진지를 쌓은 시기를 기점으로 400년 넘게 서귀포시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솔동산 일원을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을 주요 테마로 엮었다. 서귀포시의 '솔동산 문화의 거리 힐링 페스티벌' 등 서귀진지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연과 체험 행사도 이어졌다.

2017년엔 송산동에서 작가의 산책길, 솔동산 거리, 보목포구를 이은 트레킹 코스인 '송산동 컬처트랙'을 개발했다. 중간중간 놓인 안내판 QR코드에 접속하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제공된다.

솔동산 거리 남쪽 전망대에 서면 서귀포항, 새연교 등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진다. 사진=진선희기자

제주도 연구 용역으로 나온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및 운영 기본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2015)를 보면 솔동산 거리 평가 점수는 보통 이하에 속했다.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전체 14개 평가 항목 중 주차장 위치·규모, 보차 분리 등 외부 동선, 옥외 공간 등 4개만 4점이고 나머지는 3점 이하다. 장소의 인지도,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 여부와 지속적 교육, 문화예술 행위 공간 또는 시설의 여부 등 3개 항목은 2점을 받았다.

그동안 솔동산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사업들이 추진됐지만 최근에는 정체된 모양새다. 갖가지 조형물로 거리를 '장식'하고 있을 뿐 방문객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이나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솔동산 8경' 스토리텔링 이후에 솔동산 거리를 안내하는 해설이 있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솔동산 문화의 거리 힐링 페스티벌'은 지난해 관련 예산이 삭감됐고 올해는 아예 사업비를 요청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는 솔동산 거리 등 문화의 거리 기본계획을 내놓은 적이 없다.

2017년 1월 솔동산 거리 시설물을 제주도에서 이관 받은 서귀포시는 자체 문화예술 핵심 사업인 작가의 산책길과 연계해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솔동산 거리는 작가의 산책길을 통해 상승 효과를 얻고 있을까. 서로 다른 명칭으로 서귀포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길 위에서 솔동산 거리가 존재감을 높여야 작가의 산책길도 더 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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