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82)쓸쓸해서 머나먼-최승자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82)쓸쓸해서 머나먼-최승자
  • 입력 : 2024. 08.27(화) 01:00  수정 : 2024. 09. 02(월) 14:23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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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최승자




[한라일보]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삽화=배수연



흔히 80년대를 시의 시대라 부르고, 그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시인에 최승자를 포함시키는 이유, 최승자의 시가 읽히는 이유는 그의 시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진은영은 자신의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의 시인의 말에 왜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 라고 썼는지도. 혼신의 힘을 다해 격동의 시대와 싸우고 11년의 침묵 끝에 나온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표제시에서 최승자의 자기 인식에 관한 발설은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에 다 들어 있다. 삼천갑자를 산 동박삭의 세계가 '먼 세계'이고 '이 세계'이며 기독교, 불교, 도가 등 여러 겹의 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은 의기소침과 자기 모멸적 언어로 오염과 위선의, 비 내리고 눈 내리는 '오늘'의 부당한 시간에 응수한다. 내게 삼천갑자를 허락할 생각도 죽음을 허락할 생각도 없는 세계에 대해 인식은 간명하고, 또 그것은 쓸쓸한 이야기이다. 시작(詩作)의 도정을 빤히 내다보면서 어딘가에 정착하고픈 자신 또한 아무것도 풀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다, 그것마저 이제 시에 맡겨둔 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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