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의 한라칼럼] 최저임금 '을 대 을'의 밥그릇 갈등 아니다

[이윤형의 한라칼럼] 최저임금 '을 대 을'의 밥그릇 갈등 아니다
  • 입력 : 2018. 02.13(화)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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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것은 밥이 입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생명의 원천이 바로 밥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선뜻 나오는 말이 "언제 밥 한번 먹자"다. 다른 말도 많은데 하필 밥을 먹자고 한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에겐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 곧 밥이다. 연봉 1억 원이 넘는 고액을 받건 최저임금을 받건 다르지 않다. 물론 밥그릇 크기에 따라 노동자들의 느끼는 감정이나 생활은 제각각일 것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가 하면 버티기도 힘든 팍팍한 일상의 연속인 노동자도 많다. 밥에는 자연의 섭리, 밥 짓는 정성, 일 년 농사를 짓는 농부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다 들어있다. 이 뿐일까. 빈부격차와 직업의 귀천 등이 밥을 통해 드러난다. 정치·경제·사회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식일완만사지(食一碗萬事知)'라 했다.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이 말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다. 시급 7530원으로 오르면서 월 최저임금은 157만3770원(월 근로시간 209시간 기준)이 됐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차원이다. 그런데 그 얼마 되지 않는 밥그릇마저 본질보다는 정쟁의 대상으로 변해 버렸다. 마치 경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물가 인상의 주범이 된 듯 한 이상한 분위기다.

그렇지만 한국갤럽이 지난 1월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조사에선 50%가 '적정하다'고 답했다. '높다'는 응답은 27%였고, 오히려 '낮다'는 응답도 17%였다. 6%는 의견을 유보했다. 올해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38%)과 부정적 영향(39%)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은 팽팽했다. 국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대선 과정에서 여야 각 후보들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내걸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 합의가 은연중에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의 대상이 된 이들이 괜히 죄인이 된 듯 한 분위기는 찜찜하다.

있는 사람들에겐 밥 한 그릇의 의미가 그리 절실하지 않을 것이다. 밥에 대한 걱정이나 절박감이 그만큼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다르다. 그야말로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조사 결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80% 정도가 가족 생계를 짊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아르바이트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가정의 핵심소득원인 셈이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모두 개인의 능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소득 양극화와 빈부격차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다.

최저임금 인상은 대기업엔 큰 영향을 못준다. 이에 직접 노출된 소규모 영세자영업자들이 걱정이다. 여기에 일터를 둔 저임금 노동자들 모두 경제현장에선 이른바 '을'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 대 을'의 밥그릇 갈등만 부각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 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덜어주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시행에 앞서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를 탓해야 한다. 보다 정교한 보완대책을 서둘러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이윤형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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