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제주를 디자인하다] (4)위기의 도시숲

[녹색 제주를 디자인하다] (4)위기의 도시숲
환경·기후변화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도시숲 위협
  • 입력 : 2019. 04.09(화) 2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의 상징 가로수인 왕벚나무도 병행충에 위협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주시 전농로 왕벚나무 가로수를 비롯해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지속가능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진은 전농로 벚꽃거리. 강희만기자

연동 일대 담팔수나무 등 병해충에 노출 점차 고사
왕벚나무로 피해 확산돼
도로 개설 등으로 유서깊은 가로수 사라져
조성 보다 관리에 방점을


인간은 기후변화와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면서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런 인류를 고인류학자들은 기후에 적응하는 인간, 즉 호모클리마투스(Homo climatu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이 기후변화에 적응해온 자체가 진화사이자 인류사라고 보는 것이다.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삶의 질 악화에 대비 도시숲을 가꾸는 것도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진다. 애써 가꾼 도시숲이 또다시 기후변화나 환경적 요인, 혹은 개발사업 등 인위적 요인에 의해 고사하거나 사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환경과 기후 변화는 물론 각종 개발사업은 도시숲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제주시 연동 일대에 병해충으로 잘려나간 담팔수나무 흔적. 사진=제주시 제공

제주시 연동 신대로 일대. 이곳에는 40여 년 전부터 가로수로 식재된 담팔수나무가 도심 속 아름드리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 1.8㎞구간에는 신제주 건설 당시인 1977년부터 심기 시작한 담팔수나무 13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수년 전 병해충으로 몇 그루가 고사하면서 2016년부터 제거작업이 진행됐다. 그해 연삼로, 신대로 등에 심어진 담팔수나무 16그루를 제거한데 이어 2017년엔 75그루를 베어냈다. 2018년에도 44그루를 제거하는 등 모두 135그루를 잘라냈다. 가로수로 심은 담팔수나무 1178그루 가운데 9분의 1 정도가 잘려나간 것이다.

피해 원인은 파이토플라즈마(phytoplasma) 감염에 의한 위황병으로 밝혀졌다. 수분과 양분 이동을 막아 나무를 생리적 고사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전염 매개체는 깍지벌레나 매미류 및 인위적 매개로 추정되나 아직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시는 2017년부터 담팔수 가로수 전 구간에 대한 방제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고사목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사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과 함께 효과적인 예방책이 나와줘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보식과 수종 갱신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담팔수는 제주 자생종이다. 서귀포시 천지연폭포에 위치한 담팔수 자생지는 1964년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색달동 천제연 담팔수나무는 1971년 제주도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다. 강정동 담팔수는 2013년 4월 천연기념물 제544호로 지정됐다. 그만큼 보존가치가 높은 수종이다. 가로수로 식재된 담팔수나무가 각종 병해충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제주의 상징 가로수인 왕벚나무도 병해충에 위협받고 있다. 이런 현실은 지난 2016년 제주도의회에서도 지적된바 있다. 먹무늬재주나방 등 유충 등에 의해 피해를 입은 왕벚나무가 2014년 1779그루(13개소), 2015년 1457그루(15개소), 2016년 962그루(18개소)에 발생하는 등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예방대책과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전농로 왕벚나무 가로수를 비롯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지속가능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형순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관은 "왕벚나무는 장수하는 나무가 아니고, 가로수로 심어진 왕벚나무는 병해충에 위협받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해충 이 발생했다고 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로수를 급작스럽게 바꿀수는 없는 만큼 면밀히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살피면서 연착륙 시켜 나가는 방안을 고민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농로의 왕벚나무는 수령이 80년 정도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왕벚나무 재식재나 대체수종이 필요하다. 자생종 왕벚나무의 육성을 고민해가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부터 묘목식재를 해야 10년 후 자생종 가로수 식재가 가능하다. 한 번 심은 왕벚나무가 언제까지 화사한 꽃을 피워낼 수는 없다. 한 번 심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김근용 제주시 공원녹지과장은 "전농로 왕벚나무 등 도내 왕벚나무 가로수에 대한 전문가의 자문 등 실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정밀조사를 통해 관리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 대중교통체계 개편 명목으로 제주중앙여고 사거리~제주여중고 사거리 중앙화단에 심어진 가로수 구실잣밤나무가 대거 뽑혀나갔다. 한라일보DB

도시 개발에 의해 위협받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다양한 유형의 도시숲을 조성하고 있지만 도로 확포장이나 주차장 조성 등 도시계획차원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제주시가 주차난 해결을 이유로 일도2동 도시숲에 주차장 조성을 추진하면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도시숲을 훼손하면서까지 주차장을 만드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컸다. 시는 공원부지 5만5286㎡중 9760㎡를 도시계획시설 주차장으로 변경하고 이중 3585㎡에 129면의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결국 주차장 조성을 위한 도시숲 파괴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반발에 밀려 전면 철회됐다. 이는 도시숲에 대한 당국의 근시안적인 시각을 보여준 사례다.

제주시 도심의 상징성이 높은 가로수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명목으로 도심 가로수들이 대거 뽑혀 나갔다. 제주여고 사거리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1973년 제주시 최초로 가로수 구간으로 조성됐다. 그만큼 역사성이 깃든 구간이다. 그런데도 2017년 도로 확장을 명분으로 이설했다. 제주시 녹지부서에선 이설 불가를 나타냈지만 개발 욕구 앞엔 천덕꾸러기 신세일 뿐이다. 공항로에 식재된 후박나무 등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앞세워 도시숲을 없애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후진적 행태나 다름없다.

도시숲 조성과 관리를 토목공사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가로수 등 유서깊은 도시숲은 토목공사 하듯이 싹 베어내고 일률적으로 심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로수를 포함한 공원 등 도시숲은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관리는 더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1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