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문화도시 꿈꾼다면 도심 제주목 관아부터 바꾸자

[진선희의 백록담] 문화도시 꿈꾼다면 도심 제주목 관아부터 바꾸자
  • 입력 : 2019. 10.2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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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말 그대로 광장이었다. 차량이 사라진 그 시간, 검은빛 아스팔트가 쉼터로 변했다.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고 차도 위엔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붉은 빛 의자가 널브러졌다. 20일 낮 관덕정 앞. '2019 대한민국 문화의 달 제주' 행사장으로 잠시 바뀐 풍경이 그랬다.

정부의 문화의 달 기념 행사를 유치한 제주시가 이날 도심을 잠시 차 없는 거리로 탈바꿈시켜놓았지만 어디까지나 하루짜리 이벤트였다. 문화가 있는 도시를 꿈꾸며 애써 몇 시간 주변 도로를 통제해 벌인 일이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그곳으로 차가 달린다.

하지만 문화도시라는 그림은 가까운 곳에서 그릴 수 있을지 모른다. 관덕정에서 몇 걸음 떼어놓으면 가닿는 제주목 관아 이야기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중·개축이 몇 번 이루어지다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훼철되었다. 관덕정만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의 제주목 관아는 건물터를 확인한 뒤 제주 시민들이 기와 5만여 장을 내놓아 2002년 12월에 복원을 마친 시설이다. 제주목 관아지 일대는 앞서 1993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뜻있는 이들의 힘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이지만 그동안 제주 문화동네 사람들을 통해 들려오는 제주목 관아는 시민들과 거리감이 있었다. 건물 내부를 이용할 수 없도록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라순력도 체험관과 망경루를 빼면 숫제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복원된 시설마다 놓여있다. 문화재라서 안된다, 안에 설치된 인물 모형이나 재현물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얼마 전 문화재를 생활 속에서 가깝게 즐기자며 기획한 사업이 제주목 관아에서 열렸다. 그 때 날씨가 궂어지자 정자 마루로 옮겨 행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관리 부서에서 손사래를 쳤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강연을 이어가겠다고 해도 거절 당했다.

이번 문화의 달 행사와 연계해 제주목 관아에서 개최된 '문학 불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회 장소로 쓰였다는 우련당이나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짓는 곳이었다는 귤림당을 놔두고 야외에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놓은 채 문학 콘서트를 꾸려갔다. 어느 축제에서는 간신히 내부 사용을 허가받았는데 주최 측에서 아트 마켓을 차릴 때 바닥에 흠이 생길까 천을 깔아놓던 모습을 봤다.

이는 관아와 이웃한 보물 322호 관덕정과 사뭇 차이를 보인다. 근래 지어진 제주목 관아와 달리 관덕정은 수 차례 중수되며 옛 모습을 잃었다고 하나 15세기 이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관덕정 안에서 입춘굿판 등이 펼쳐졌던 걸 떠올려 보시라.

문화를 자꾸만 일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일은 또 있다. 되살려놓은 관아 건물이 도심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관아를 가로질러 제주북초등학교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이 역시 건물 내부처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사방의 벽을 허물고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도심의 휴식 공간으로 제주목 관아 일대를 가꿔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주도 문화재 부서에서 살펴볼 대목이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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