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불편한 재미
  • 입력 : 2021. 11.19(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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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전통적으로 매년 11월은 영화관의 비수기다. 명절을 낀 연휴가 없고 대작들이 개봉하는 시즌이 아닌 11월의 극장가는 늘 한산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지 오래다. 천만영화들이 여럿 탄생하고 개봉일에 하루에 1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던 히트작들이 탄생하던 코로나 이전의 극장가는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의 극심한 온도 차다. 또한 11월 국내에 런칭한 글로벌 OTT플랫폼인 애플 TV와 디즈니 플러스의 공세까지 더해져 극장은 올해 11월의 극장가는 더욱 수세에 몰렸다. 다행스럽게도 영화진흥위원회는 11월에 할인권 정책을 시작했다. 멀티플렉스를 비롯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11월 한 달 동안 6000원이 할인된 금액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 덕에 극장가는 조금은 활기를 띠고 있는 모양새다. 백신접종을 완료한 관객들은 백신패스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고 마시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고 한동안 멈췄던 심야 영화 상영도 재개되었다. 나 역시 11월의 혜택을 누리고자 부지런히 영화관을 찾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백신패스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품에 안고 심야 영화를 관람했다.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고 달콤한 팝콘을 입에 넣고 콜라를 들이키자 아찔하게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예고편 상영이 끝나고 순식간에 컴컴한 어둠이 극장 안에 내려앉았고 이내 오직 나와 영화만이 존재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극장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고 앉았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 영화가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다 두근거릴 정도였다. 당연히 리모컨으로 버튼을 눌러 영화를 탐색하고 재생하고 멈추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불편한 재미. 영화관을 찾는 일은 번거로운 행위일 수 있다.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이 대략 두 시간이라고 했을 때 상영 시간과 대기 시간 그리고 왕복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서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것 또한 내가 원하는 영화의 상영 시간과 장소가 맞아 떨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한 작품이 개봉해서 극장에 걸려 있는 시기는 2주에서 3주 정도다. 히트작일 경우에는 한 달 넘게 장기 상영이 지속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스크린에서 보름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 극장을 찾아가 본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영화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다 지난 10월 20일 개봉한 작품이고 첫 주 흥행에 실패해서 대다수 상영관에서 자취를 감춘 영화다. 개봉이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서울에 남은 스크린 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고 상영시간표는 이른 오전 아니면 심야에 편성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호평을 들었던 영화라 볼 마음을 품었지만 어느새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고서는 관람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영화 티켓 값보다 곱절은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고 서울 시내 몇 개의 구를 건너 밤 11시 반에 그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 안은 한적하고 아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극장 로비를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고 로비 공간의 의자들은 쾌적했다. 심야 임에도 불구하고 매점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사서 마실 수 있었고 손으로 만져본 영화 전단지들의 질감은 반가웠다. 영화의 러닝 타임에 가까운 이동 시간, 영화의 티켓 가격을 상회하는 교통비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의 모든 요소들이 크게 만족스러웠다. 가성비를 따지는 일이 잦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내가 지불한 기회 비용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는 무려 두 시간 반을 넘는 러닝 타임의 작품이다. 중세 시대의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훌륭한 프러덕션 디자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자 여든이 넘은 나이의 노장 리들리 스콧의 탁월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대작 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여성 인권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를 보며 내내 감탄했고 두 시간 반이라는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 마시다 남은 커피를 들고 극장을 나오며 '내가 이 작품을 극장에서 놓쳤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TV나 아이패드, 스마트폰으로 영회를 봤다면 나는 틀림없이 러닝타임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빨리 감고 되감거나 멈추는 등 손가락의 난입으로 작품을 만든 이들의 의도를 순식간에 지나쳤을 것이라는 확신. 다행이었다. 극장을 택한 덕분에 나는 귀한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고 아마도 오래 이 영화를 곱씹고 기억할 추억을 갖게 되었으니. 불편한 재미를 가득 품에 안고 맞는 극장 밖 새벽 시간의 차가운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 전 본 영화 <퍼스트 카우>에는 인상적인 인용구가 나온다. '쿠키에게는 우유를, 인간에게는 우정을' 그렇다면 '영화에게는 관객을, 관객에게는 극장을'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대체적으로 사랑은 쌍방 소통이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극장을 찾자. 그것이 지금 시국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관객의 일이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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