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문화광장] 전사한 군인의 무덤에 해바라기 꽃이 핀다

[김정호의 문화광장] 전사한 군인의 무덤에 해바라기 꽃이 핀다
  • 입력 : 2022. 04.26(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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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초기에 SNS에서 화제가 된 동영상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 병사에게 중년의 여성이 다가가 왜 평화롭게 사는 이곳을 침략했냐, 너의 어머니, 너의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하는 것을 모르느냐, 어서 돌아가라, 여기 이 해바라기 씨를 군복 주머니에 넣어두라, 그래서 네가 죽어 이 대지에 묻히면 최소한 해바라기꽃이라도 피게 될 그것이라고 말한다. 완곡한 저주이면서도 파괴의 전쟁상황에서 어머니로서의 땅, 대지의 생명과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의 곡창지대라고 알려진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은 밀과 해바라기 기름 생산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걸작 ‘자전거 도둑’(1948)을 만든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연출하고, 이탈리아 대표 배우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출연한 ‘해바라기’(1970)는 미소 냉전기에 이탈리아와 소련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나치의 동맹국인 이탈리아 군인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의 돈 강 유역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했던 안토니오는 추위와 굶주림에 탈진해 후퇴행렬에서 낙오해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를 살려낸 이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혼자 생존한 우크라이나 소녀이다. 이 둘은 가정을 이루고 딸을 낳아 기르게 된다. 한편 전쟁에서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던 조반나는 전쟁이 끝나고 스탈린이 죽고 잠시 해빙기가 올 때 남편을 찾아 직접 모스크바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치군, 이탈리아군, 소비에트 러시아군이 함께 묻힌 대평원 위로 피어난 해바라기들과 수없이 펼쳐진 십자가의 묘지를 목격한다. 마침내 남편을 찾은 조반나는 새로 이룬 그들 가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혼자 밀라노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전쟁에 환멸을 느꼈던 이탈리아 군인들이 탈영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가정을 꾸렸던 2차대전의 실제 사건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의 것으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우크라이나의 것들이다. 영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다루고자 한다. 테트리스 게임에서 춤추는 댄스도 사실 우크라이나 코차크 전투 민족의 춤이다.

코차크 출신의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Taras Bulba’(1842)를 미국에서 영화화한 ‘대장 부리바’(1962)에서 율 브리너가 튀르크족의 침략을 물리쳤으나 다시 폴란드의 침략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족장은 폴란드의 동화정책에 따라서 두 아들을 키이우의 폴란드 학교에 보내 폴란드어와 학문을 배우게 하는데, 둘째 아들은 폴란드 총독의 딸과 사랑에 빠져 민족을 배신하게 되고, 족장은 그러한 아들을 죽이게 된다. 1741년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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