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것들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것들
  • 입력 : 2022. 10.26(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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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4일부터 23일까지 KBS대구방송총국 전시실에서 (사)에밀타케식물연구소 주관으로 '대한제국 식물표본전'이 있었다. 포항의 문인화가이신 이형수 선생의 초청으로 10월 18일 대구로 가서 전시회를 찬찬히 둘러봤다. 이형수 선생께서는 전시를 총괄한 에밀타케식물연구소의 정홍규 신부와 가깝게 교류했는데, 제주 출신인 나를 특별히 초청을 해주셨다. 참 고마우면서도 전시회장을 나서며 몹시도 부끄러웠다.

표본 리스트는 포리(Faurie) 채집 19, 타케(Taquet) 채집 57 그리고 에카르트(Eckardt) 채집 3점이 전시됐다. 그리고 원하면 가지고 갈 수 있는 우리 고유 토종 식물의 씨앗들이 전시됐다. 더불어 식물채집가로서의 포리 신부, 타케 신부의 삶과 그 업적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들도 함께 전시됐다. 100년 전쯤의 실물을 보면서 우리 고유의 풀과 나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떠올라, 늘 부르짖는 자연·환경 그리고 생명과 함께한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아쉬웠지만 전시회를 주관한 에밀타케식물연구소의 정홍규 신부는 만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국가와 정부의 허락 없이 포리와 타케 신부가 일제에 기대어 우리 땅의 토종 식물들을 해외로 반출했다는 부정적 평가는 면할 길이 없다. 다만 정홍규 신부의 자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저서 '식물십자군'(여름언덕, 2022)과 '에밀타케의 선물'(도서출판다빈치, 2019)에서 두 식물채집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기록으로 남겨뒀으므로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전시회의 주제며 카피를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제주인으로서 기회가 되면 정홍규 신부와의 만남을 소망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왜냐 하면, 전시회의 표본들이 일부 대만과 오키나와에서 채집한 표본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주도에서 채집한 표본들이었기 때문이다. 표본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듯이 살피며 지난날 보잘것없는 것처럼 생각하던 제주도의 풀과 나무들이 왜 그리도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왜 이런 표본을 두고 제주도가 아닌 대구에서 전시를 하게 됐는지 아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몹시도 부끄러웠다. 두 식물채집가에 의해 반출된 역사적 사건만을 확대하며 지금 제주인 스스로 제주의 풀과 나무들을 제초제로 하나씩 절멸해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런 전시가 제주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엊그제도 들길에서 밟고 지나갔을 그런 풀 한 포기가 전시된 곳에서의 울림과 부끄러움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전시회를 대변하는 카피(copy)격인 '표본은 영원하지만 학명은 바꿀 수 있다'는 말로 위로를 받고 싶다. 호기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씨앗 몇을 가지고 오려다가 그냥 되돌아왔다. 혹시라도 내 무지한 손으로 그 귀한 씨앗이 사라지거나 메마르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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