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토끼를 닮았다고 하는 토산봉에는 토끼가 없다. 문주란의 자생지로 유명한 토끼섬은 어떨까. 역시 토끼가 살지 않는다. 토끼섬은 한여름에 피는 문주란의 하얀 꽃들이 마치 흰 토끼들이 모여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된 것이다. '제주풍토록'과 '탐라지'에도 토끼가 산다고 언급된 바 없어 애초에 제주섬에는 야생 토끼가 살지 않았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토끼를 길렀던 적이 있으며 토끼 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도 더러 있었다. 요즘은 일부 관광지에도 볼 수 있고 도두봉이나 사라봉 정상에 가면 동작이 느린 토끼들을 만날 수 있다. 기르던 집토끼를 몰래 풀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속담에 '우영에 든 꿩 놔뒁 밧딧꿩 심젠 한다'는 멀리 오름이나 들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까운 집 울타리 안에 들어 온 꿩을 놓치는 경우를 빗댄 것이다. 욕심이 지나침을 나무라는 것이다. 꿩뿐만 아니라 토끼도 놓칠 수 있다. 누구든 집토끼와 산토끼를 잘 안다. 특히 높은 지위를 누리는 사람은 집토끼와 산토끼를 다 잡아보려고 안달이다. 집토끼에 애정을 쏟다 보면 산토끼들의 불만이 늘어난다. 반대로 산토끼의 말만 듣다 보면 집토끼들이 배신한다. 세상만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토끼도 없는 토산봉과 토끼섬에 들어가 토끼를 찾으려고 한다.
토끼의 귀는 길고 크다. 왜 그럴까. 천적의 접근을 알아차리려면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야 한다. 사실 여우와 같은 포식자는 살금살금 접근하기 때문에 토끼는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평소 숨을 데를 봐두거나 땅굴을 파둬야 하며 귀를 쫑긋쫑긋 세워야 한다. 멧토끼나 우는토끼는 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풀을 뜯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수시로 경계한다.
유비무환.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원하지 않은 재난은 닥치게 마련이다. 세상살이는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들어야 한다. 토끼와 사람의 귀가 앞으로 향한 것은 상대방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며 큰소리치지 말라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서 나오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참 곱다. 바다에 사는 거북이와 땅에 사는 토끼가 경주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실 잘난 체하다가 토끼가 진 것이 아니라 거북이가 이길 수 있도록 토끼가 낮잠을 잔 것이다.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비아냥거림에도 토끼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희생해야 다 함께 행복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북이도 그렇다. 뻔한 시합이었지만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채 부귀영화를 누리며 땅땅거리는 인간들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토끼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북이의 넉넉함과 부지런함, 거북이보다 늦게 도착한 토끼의 진심과 배려, 그리고 결승전에서 다 함께 손뼉 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