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시부문 - 장현숙

[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시부문 - 장현숙
  • 입력 : 2023. 01.02(월) 00:00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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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시 - 장현숙 "힘들 때 찾아온 아버지의 선물"

치과 진료 중이었습니다. 손에 꼭 쥔 전화기 진동이 울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볼게요 하고 접한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귀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열흘 전 곁을 떠나신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병간호 잘해줘서 고맙다고 등을 토닥여주시며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던 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과 그 흐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같다고 하는데, 나는 종종 한 박자 느리고 생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꼭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책들의 제목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제목들만큼 알맞은 문장이 있을까요. 또 책들은 그 맛이 제각각입니다. 짠맛 신맛은 물론 마음에 꼭 맞는 맛들도 있습니다. 새벽까지 읽던 책이 뜨겁게 졸아서 내 가슴속 지워지지 않는 맛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 김병택, 양영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문장의 흐름과 이미지를 선연하게 가르쳐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시클, 김산, 이종섶, 이수정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과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애하는 엄마, 동생 현남, 옥희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 주는 남편 김병기, 민서, 민규, 주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1964년 경기도 김포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심사평] 현실 속 사물과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심사위원: 김병택(시인, 문학평론가), 양영길(시인,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71편이다. '시적 산문'을 산문시로, '공상'을 '상상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소수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미리 마련한 심사 기준에 유의하면서 모든 작품을 정독한 뒤, 토론 대상으로 삼을 4편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여름의 부피들', '발자국 상점', '구석구석의 힘', '책을 끓이다' 등이 그 작품들이다.

여름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엄마'를 시적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 '여름의 부피들'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널려 있는 상투적 비유가 작품을 진부하고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지적되었다.

상상력은 현실에 토대를 둘 때에만 나름대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발자국 상점'에서는 여과 장치 없이 생경한 모습으로 드러난 상상력이 독자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상의 전개가 치밀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의 힘'에서의 '구석구석'이라는 핵심어는 추상성에 의존하는 단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책을 끓이다'는 현실 속의 사물인 '책'과 그에 수반하는 작자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시어 운용의 능숙한 솜씨가 사물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배가하고 있는 점이 크게 돋보였다. 시적 화자의 스탠스가 분명하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더 정진하기를 바라고,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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