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민의 책과 함께하는 책읽는 가족] (2)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서귀포시민의 책과 함께하는 책읽는 가족] (2)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 다음 나날 살게 하는 원동력"
  • 입력 : 2023. 04.28(금)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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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간 진행된 16차례 인터뷰  
'죽음 곁의 삶' '삶 속의 죽음'
 인생 스승이 전한 마지막 말들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등
 계속해서 질문하고 의문 품도록
 삶의 방향성 잃었단 이에게 추천 




 ***문화전문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김지수 작가는 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를 통해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죽음 곁의 삶' '삶 속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령은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답을 내놓으며, 인생 스승으로서 세상에 남을 제자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낸다. 이 책은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스승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이며, 남아 있는 세대에게 전하는 삶에 대한 지혜로운 답이다.

 누군가의 인생항로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때, 방향키를 잡고 있는 삶의 주인공에게 등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마지막 인터뷰가 바로 그런 등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깜깜한 바다 위에 남겨진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고 마침내 그 빛을 발견한 가족과 독서대담을 나눴다. <김지수 지음, 출판사 열림원>

 

 

▶대담=이혜연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책 읽는 가족=이은숙·노광용 부부 


 

4월 마지막 주 '책 읽는 가족'에 함께한 이은숙·노광용씨 가족.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이혜연(이하 이) :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은숙(이하 은) : 저는 현재 서귀포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있는 '일하는 엄마이자 워킹맘, 직장맘' 입니다. 마음 속으로 항상 배우자의 아내로서의 나, 아이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그냥 나로서의 삼각형의 균형 속에서 아슬아슬 그 추를 맞추며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요즘 이 균형의 무너짐을 자꾸 느껴서 나의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는 각오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시대의 지성인이자 큰 스승인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해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노광용(이하 노) : 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좋다고 표시해 둔 부분은 더 중점적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배우자가 추천하는 책은 시간을 쪼개서 꼭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 두 분이 같은 책을 읽고 여러 가지 대화를 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은숙 선생님께서는 그래서 고민거리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얻을 수 있으셨나요?

 ▷은 : 네. 사실 이어령 선생의 라스트 인터뷰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좀 부담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작은 성취가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이 책 한 권 완독하면 그래도 뭐 하나 제대로 끝내는게 있겠네'라고 스스로를 응원했죠.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이 90% 이상 사라졌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또 책 안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이 저에 다음 나날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꼭 메모지와 펜을 손에 쥐고 하거든요. 작년까지는 낱장의 메모지에 작성했더니, 다 잃어버리고 남겨두지 못해서 올해부터는 필사노트를 하나 구입했어요. 손으로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뇌도 집중력을 발휘하더군요. 게다가 책을 덮고 나서 필사노트를 찬찬히 살펴보며 제가 쓴 글씨를 보다보면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도 머릿 속에 상기되면서 다시 한 번 생각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머지 10%의 고민과 걱정이 지워졌어요.

 

 ▶이 : 삶의 원동력이 되는 문장들을 많이 찾으셨을 것 같은데 책 속에서 소개해주고 싶은 문장이 있나요?

 ▷은 : 9장 바보의 쓸모에 나오는 문장인데요,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라고 묻는 부분입니다. 저자인 김지수 작가도 '허공의 날아든 단도처럼 뒷골이 서늘해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정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느낌이었어요. 선생은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을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하고 반문합니다. 저는 스스로 번민하는 시간들도 결국 자책으로 채웠습니다. 바쁜데 이런 쓸데 없는 생각할 시간이 어디있냐고요. 하지만 선생이 말하는 것은 결국 이 시간들이 진짜 '나'와 '나의 인생'을 찾는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거에요.

 ▷노 : 저는 'interest'란 영어 단어를 가지고 이어령 선생이 하신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interest'는 흥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 라는 뜻도 있는데요. 뭐든 재미있어서 하면 저절로 이익이 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사실 월급쟁이들 중에 자기 일이 즐거워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죠.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다면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난다네.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부분이 또 이어집니다.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더라도 제 마음가짐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저에게는 큰 응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 그럼 두 분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은 : 저는 책이 접속장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 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네." 선생은 계속해서 질문하고 의문을 품으라고 합니다. 질문은 자기 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면서요. 지금 선생님과 저도 질문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이 대담을 읽어보실 많은 분들도 우리의 이 질문과 대답들을 보시고 스스로의 재구성을 하시겠죠? 그런데 선생님과 저는 오늘 처음 본 사이니까 질문의 내용이 막연해질 수 있어요. 이럴 때 바로 책이 등장합니다. 접속장치로요. 책을 통하니까 이야기거리가 풍성해지잖아요. 사실 책 읽기는 혼자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와 나눈다면 그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와요. 전에 읽었던 '독서모임 꾸리는 법, 유유, 원하나'에서 "그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고 그 책에서 느낀 점을 삶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그때는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좋아서 적어둔 것이 기억나네요. 점점 더 파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책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드러낼 것입니다.

 ▷노 : 책은 관문입니다. 저에게 책은 '교과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입니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라고요. 책의 다양한 기능 중 극히 일부만을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학교 밖으로 나온 이후에는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그 책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책은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게 하는 관문입니다. 요즘은 저도 조금씩이지만 책을 읽어보는 중입니다.

 

 ▶이 : 끝으로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나요?

 ▷은 : 삶이 방향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바쁘게 살아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보고 나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구나 하고 허무함이 몰려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이어령 선생님의 화려한 이력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얼마나 어려운 말을 하실까 하고요. 하지만 오히려 작은 이야기들로 시작하더라고요. "이 책이 엄격한 문자가 아니라 독자들의 삶에 찰랑이는 비유의 말로 남기를 바란다"라고 합니다.

 이 책이 내용들이 삶의 진리나 신념이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어요. 책에서도 계속해서 선생은 신념은 위험하며 우리는 늘 'maybe(아마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절대 진리보다는 늘 질문하고 치열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죠? 늘 질문하게 하는 책, 생각하는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갈 생각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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