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윤의 한라칼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조상윤의 한라칼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 입력 : 2023. 06.27(화)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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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정치(政治)는 곧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일컫는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결국 정치가 바로 서야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치는 우리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한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고,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져도 10년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돼 있고, 오랜 세월을 지속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무너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가 정치인들은 권불십년을 알기에 어떤 형태로든 이의 연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기보다 상대의 단점을 헐뜯고, 비난하면서 깎아내려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로 인해 갈수록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면서, 중도층마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차피 5:5로 양분된 지금의 정치지형은 당분간 불변이다. 중도층을 껴안기보다는 시쳇말로 산토끼는 잡지 못할 것이기에 집토끼만이라도 안전하게 확보하자는 속내가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정치세력들과 정치인들은 신문·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 또는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곤 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나름 독자들과 시청자들, 국민들에게 어필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이 달라졌다. 굳이 언론을 접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소신을 피력할 수 있게 됐다. SNS가 대표적일 수 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 주장 등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호평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소음공해나 눈의 피로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래도 정당과 정치인들의 입김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 수단이 바로 현수막 정치인가 싶다. 그런데 최근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면 가관이다. 저급하고 비열한 내용이 판을 치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 기 싸움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이거나 잘한 일들은 발 빠르게 SNS를 바탕으로 널리 알리면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왜 굳이 거리를 오염시키는 현수막으로 하는 것일까.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할망정, 남을 헐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와 정치인들의 수준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내뱉거나, 긴 천에 적히는 내용 모두 국민들이 듣고 보는 것이다. 고급스럽진 않아도 진심이 담긴 내용들이 적히고, 보고 들리게끔 하는 정치인들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투표를 안 하면 최악이 당선된다고 하면서, 차선이라도 택하라는 말에 동감하지 못하겠다. 제발 최선이 당선되는 세상이 돼야 한다. 현수막은 원래 깨끗한 흰색이었다.<조상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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