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정의 목요담론] 제주와 문화도시

[오수정의 목요담론] 제주와 문화도시
  • 입력 : 2023. 08.03(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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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며칠 전 성읍민속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감'에 대한 짧은 영상을 봤다.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에서 노지문화자원의 발굴과 기록, 보존, 재생, 활용이란 차원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 영상에서 전해주는 내용은 제주 전통문화의 영상기록이란 측면도 있지만, 흔히 경조사 때 볼 수 있는 '도감'에 대한 과거의 문화를 확인시켜 주었다. 도감은 지금도 잔칫집이나, 상갓집에 가면 한쪽에서 돼지고기를 썰고 '괴기반'을 나눠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잘 써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도감(都監)은 혼례와 상례 때 모든 의식을 총괄하는 감독관을 말했다. 도감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그 집안의 경제력과 으레 방문객을 짐작해서 돼지 한 마리가 어느 정도 소비될지 헤아린 후 돼지 잡는 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경조사 때 돼지고기는 아주 귀한 음식으로 대접됐다. 그래서 도감은 한정된 고기의 양을 잘 썰어 찾아온 모든 내방객들에게 한 분도 빠짐없이 '괴기반'을 나눠주는 역할까지 담당했던 것이다.

도감의 사례에서 보여주듯 제주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문화들이 존재한다. 급속히 현대화된 지금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축소, 변질되는 문화자원들을 어떻게든 유·무형자산으로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2014년 지역문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는 노력의 결과로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했다. 그 후 방방곡곡에서 파생된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발굴, 인정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제주 역시 비껴갈 수 없는 세계적 4차 혁명의 흐름 속에 지역문화에 대한 발굴, 보전이란 과업이 지금까지도 큰 숙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라는 섬, 세계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 속에서 파생된 고유한 생활문화가 문화정체성이란 이름으로 중요한 경제적 부가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경제·사회 발전과 인류진보를 위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서 문화가치 중심의 패러다임이 강조되고 있다. 영국의 문화기획 컨설팅사인 코메디아의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는 문화자원을 도시와 그 가치 기반의 원자재이고 석탄과 철강, 금을 대신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결국 지역사회의 경제발전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며 도시발전의 기반을 제공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지역문화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간과할 수 없음이다.

서귀포시에서 2019년 12월 문체부로부터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된 이유에는 노지문화라는 콘텐츠에 있다. 감귤에서나 들어봤을 듯한 '노지'를 지역문화라는 콘텐츠로 풀어내기 위해 잊히고, 무의미해지고, 사소해지고, 더 변형되기 전에 문화의 원형을 영상에 담았다.

문화도시센터에서 영상기록 된 노지문화를 제주시 상영관에서 토크쇼의 형태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니 제주문화 하나하나의 중요성과 문화도시의 가치를 다시 찾는 시간이 됐다.<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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