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인과율(因果律)에 기대어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인과율(因果律)에 기대어
  • 입력 : 2023. 09.20(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일반적으로 병증 치료 방법으로 동·서양 의학에 큰 차이가 없다. 병증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치료해가는 방법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동·서양 의학의 교류로 그 치료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서양 의학이 대체로 병증의 직접적 제거와 외부적 원인의 차단에 있다면, 동양 의학의 경우는 병증의 소멸과 원인의 극복을 위한 내부의 건강성 회복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서양 의학이 즉각적이라면 동양 의학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인식은 인과율(因果律)의 법칙과 닿아있다. 이 법칙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의 개념이 다르지 않다. 즉, 물리학에서는 어느 시점의 계의 상태가 설정되면 그 이전 또는 이후의 상태는 스스로 결정된다는 개념이고 철학에서의 개념은 모든 일이나 사물은 원인에 의해 그 결과가 발생한다는 원칙이다. 이런 법칙이 우리 삶, 사회에 적용이 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원인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같은 결과에 따른 그 원인을 우리는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심지어 결과의 값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평가를 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서의 결과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가장 합리적 결과를 진단해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당당히 자신의 뜻에 따라 왜곡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과율의 왜곡은 폭력에 가깝다. 왜냐하면 당시의 정치·사회·문화는 물론이려니와 시간을 초월해서 그 왜곡의 정도는 더욱 정밀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도의원, 생태전문가, 정당인 등이 출연해서 새별오름에서 행해지는 '들불놓기'에 대한 문제와 인식 등을 토론하는 방송이 있었다. 도의원의 주장은 관광객을 통한 수입의 중요성을 토로했다. 생태전문가와 정당인은 제주의 생태 파괴와 환경 훼손 등의 부정적인 면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토론을 지켜보면서 몹시도 아쉬운 것은 토론자 모두 분할의 오류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새별오름이란 자산을 통해 관광 수입을 확대하면서 생태와 환경 문제를 지양하는 새로운 축제의 모델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상식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로부터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와 다른 생각은 나를 확장하며 살아갈 수 있기에 소중하다. 그런데 세상은 진보한다면서 나와 다른 생각들을 배척하며 나를 축소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말, 어떤 행동 하나하나에도 몹시 두렵고 조심스럽다. 호모사피엔스인 까닭이겠지만 문득 일어나는 생각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경우도 많다. 조부님께서 이름자를 '정묵(靜默)'이라고 남기셨던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헤아릴 듯하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73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