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7] 3부 오름-(16)이승악오름, 인정오름, ‘어스싱’과 같은 기원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7] 3부 오름-(16)이승악오름, 인정오름, ‘어스싱’과 같은 기원
이스렁 어스렁 한라산을 가로막은 오름들
  • 입력 : 2023. 10.31(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일대의 오름들이 한라산과 함께 동서 방향인데 이승악은 남북방향으로 어슷하게 놓여있다.

어슷하다, 물건이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놓여 있다

[한라일보] 어스란 바로 이 파를 써는 방향이라는 뜻이다. '어스' 관련 용례를 찾아보자.

어슥어슥, 여러 개가 모두 한쪽으로 조금씩 비뚤어져 있는 모양; 어슷비슷, 반듯하지 않고 가로로 놓이고 세로로 놓이다; 어슷썰기, 한쪽으로 비슷하게 써는 일; 어슷하다, 물건이 한쪽으로 조금씩 비뚜름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엇-'으로 쓰여서, '엇가다, 비뚤어지게 가다', '엇걸다, 서로 비스듬하게 걸치거나 드리워져 있게 하다', '엇결, 나무의 꼬이거나 엇나간 결', '엇그루, 엇비슷하게 자른 그루터기' 등으로 쓴다.

고구려 지명에서도 나온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횡천현일운어사매(橫川縣一云於斯買)'라는 대목이 있다. 이 말은 '횡천현은 한편으로 어사천이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삼국사기가 쓰인 서기 1145년 고려 시대 횡천현은 고구려 때엔 어사천이라고 했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횡천이란 오늘날의 강원도 횡성을 말한다. 다음은 횡성문화원의 설명이다.

"횡성이라는 지명의 연원이 되는 횡천(橫川)이라는 지명은 본래의 고구려의 명칭이라고 하는데 횡천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것은 다른 지역의 하천은 대부분 물이 북-남으로 흐르는 데 반하여, 이곳은 동-서, 즉 가로(橫)로 빗겨 흐르기 때문에 가로 횡(橫)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횡천(橫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러 기록을 보면 황천(潢川), 혹은 어사매(於斯買)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대의 오름들이 한라산과 함께 동서 방향인데 이승악은 남북방향으로 어슷하게 놓여있다.

인정오름은 마을에서 볼 때 한라산을 가로막는 방향으로 놓여 있다. 사진 김찬수



이승악에 삵괭이가 산다는 건
한자 풀이일 뿐

어사매라는 말은 어사(於斯)+매(買)로 구성한다. 여기서 '매'는 강을 지시하는 고구려어다. '어사'란 위에서 풀이한 바와 같이 '어슷', '어시' 같은 '엇'을 나타내고자 쓴 것이다.

이런 연유로 지어진 지명은 전국에 산재한다. 충남 보령시 횡간(橫看), 전남 장흥군 횡간(橫看), 완도군 횡간(橫看), 전북 군산시 횡건(橫建), 평북 선천군 횡건(橫巾), 강원 평창군 횡계(橫溪), 평남 개천시 횡계산(橫溪山), 강원 평창군 횡계천(橫溪川), 함남 금야군 횡천(橫川), 전북 무주군 횡천(橫川), 충남 보령시 횡천(橫川), 함남 금야군 횡천령(橫川嶺), 전북 전주시 횡탄(橫灘), 경남 하동군 횡포(橫浦), 하동군 횡포천(橫浦川), 황북 개성 횡혈산(橫穴山) 등이다. 이렇게 많은 지명은 모두 '횡(橫)'이란 글자를 차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어승생의 어승(御乘)은 제주도 고대인들이 발음하는 그대로를 받아 적은 것이다. 고려 시대에 어사(於斯)를 쓴 것과 같은 이치다. 어승생오름은 한라산이 동서로 놓여 있는 것에 반해서 남북으로 빗겨 있다. 제주의 고대인들은 이런 지형배치를 한라산을 가로막은 오름으로 보았던 것 같다.

또 다른 유사 지명들이 산재한다. 이승악, 인정오름 등이 대표적이다. 이승악은 남원읍 신례리에 있다. 해발고 539m, 비고 114m의 작지 않은 오름이다. 한자로는 狸升岳(이승악), 이생악(狸生岳)으로 쓴다. 대체로 지명의 유래를 '산 모양이 삵(삵괭이)처럼 생겨서'라거나 '삵괭이가 서식해서'라고 설명한다. 지역에서는 흔히 이승이, 이슥이 등으로 부른다. '이슷' 혹은 '잇'에서 온 것이다. '이슷'이란 어승생의 '어슷'의 또 다른 발음이다. 이 오름은 한라산이 동서로 길게 자세를 잡은 데 비해 이와는 가로로 방향이 빗겨 앉은 자세다. 삵과 연관 짓는 지명 유래는 이런 어원을 모르고 '이슷이'의 변음 '이승이'를 한자로 쓴 '이승악'의 한자 풀이에 매달린 결과다.

인정오름, 토평마을에서
한라산을 완전히 가로막은 형세

'어스'와 '이스'가 같은 기원일까? 우리말에 어스라는 말은 살아 있지만, 이스라는 말은 사어가 된 지 오래다. 어스나 이스는 먼 옛날 기원적으로 '빗-'에서 출발했다. 언어학에서 'p'음은 'f'나 'h'음으로도 쉽게 바뀌고, 종국에는 묵음이 되기도 한다. 이 말은 '비사' 혹은 '비스'에서 출발하여 'p'가 탈락하고 'ᄋᆞ스'를 거쳐 '어스'와 '이스'로 변화했다. 몽골문어, 칼미크어 등에서는 '이스'로, 국어에서는 '빗-', '비스', '엇-'으로, 일본어에서는 '하스(はす, 비스듬함)'로 남았다. 이 말이 제주 지명에서는 '이스'로도 남은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서귀포시 토평동에 인정오름이 있다. 표고 232.5m, 비고 49m, 저경 522m의 조그만 오름이다. 그러나 토평마을에서 보면 한라산을 완전히 가로막은 형세다. 지역에서는 인정오름, 이신계오롬이라고 하지만, 문자표기는 다양하다. 1899년에 만든 정의지도라는 지도에는 인정악(人情岳)이라 표기했다. 주변 묘지의 비문에는 은정악(恩情岳), 이신계악(以信戒岳), 이신계악(伊信界岳), 이신악(伊信岳), 인신악(仁信岳), 인장악(印章岳), 인정악(人正岳), 인정악(仁政岳), 인정악(仁正岳) 등으로 표기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름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없으니 음을 그대로 적되 가급적 뜻이 좋은 글자를 골라 쓴 느낌이다. 여기서 '계(戒)'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은 지명 접미사 지(只), 기(己), 지(支), 기(岐)와 같은 뜻으로 지명에서는 네 글자 모두 '기'로 발음한다.

이스렁오름이라거나 어스렁오름이라는 같은 듯 다른 오름을 지시하는 명칭도 마찬가지다. 이 오름은 애월읍 광령리 해발 1352.6m, 비고 73m의 작은 오름이지만, 1100도로에서도 보인다. 이 오름도 한라산을 가로막은 형세라는 뜻의 '엇'계열의 명칭이다. 언어사회에 따라 이스렁 혹은 어스렁으로도 불렀을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73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