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53)편지-김남조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53)편지-김남조
  • 입력 : 2024. 02.06(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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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삽화=써머



행위가 시작되는 곳은 언제나 마음이다. 마음의 안감 속에 꿰매어놓은 편지지 한 장이 있고, 편지는 거기에 쓰고 거기에서 부쳐진다. 오래도록 나를 외롭게 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 외로움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일은 이제 순명(順命)과 같아서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다. 중점은 이것이다. 그의 맑은 거울에 비춰지기 전에는 나의 시작이 없었고, 삶이 계속되는 한 편지쓰기도 그치지 않는다. 그 거울에 한 장의 나뭇잎 그림자 같은 글썽이는 눈매가 있고,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내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편지가 읽혀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기 전에 그것을 거둬들인다는 듯 편지는 부쳐지지 않는다. 어쩌면 편지 속의 간절한 그리움으로부터 스스로 놓여나기 위해 빙 둘러 마음에 담을 쌓는 일과도 유사하고, 어쩌면 그 편지에는 어떤 문장도 없고 더운 숨결만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다. 침묵을 뱉어내지 않고 제 안에 들이는 편지- 오늘도 편지를 쓰는 마음은 그대의 깊이 속으로 다시 또 깊이 떨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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