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예술작품이 기억을 환기시키는 법

[이나연의 문화광장] 예술작품이 기억을 환기시키는 법
  • 입력 : 2024. 05.21(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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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책장을 들춘 이의 수는 모르겠지만 제목을 모르는 이가 없을 듯한 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먹는 순간, 유년 시절의 일부를 보낸 마을에서의 잊어버렸던 기억이 무의지적으로 떠오른다. 잊고 있던 기억, 잃어버렸던 시간, 즉 과거에 주인공이 살아서 경험했던 시간과 기억 속으로 소환시켜주는 타임머신이 마들렌의 맛과 향이었다. 여기서 마들렌의 맛과 향은, 시간과 기억의 중재자로서의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품으로 대치해 읽을 수 있다. 예술가들이 시간과 기억을 감각의 집적물로서 제시하는 예술은 비단 시각뿐만이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의 감각을 자극해 어떤 기억을 소환시키고 만다.

지금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에 소환된 10명 작가들의 작업은 모두 이런 기억을 소환하는 데 하나같이 탁월한 역할을 한다. 노화의 과정에서 경험할 수도 있는 인지저하증, 그 특수한 인식의 상황 속 고독의 순간을 관통하는 작품들을 모았다는 기획자의 변을 따라 작품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알란 벨처의 '바탕화면'이란 작품은 세라믹으로 만든 70여 개의 JPEG 이미지 파일 사이로 하늘색 폴더가 두 개 섞여 있다. 기억의 저장함으로서의 문서함, 그 안에 열 수 '없'는 무수한 이미지 파일들은 인지저하증을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기억을 봉쇄한 상태로 은유하는 듯하다. 존재 안에 기억은 담겨 있지만, 즉 사라져 버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라질 수 없으므로, 봉인해 둔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밀실1'은 목재로 만들고 페인트가 헐겁게 벗겨진 낡은 문짝들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낡은 철제침대와 조명, 유리병, 의료도구, 침구 등을 배치한 설치작이다. 아픈 조부모나 부모의 병간호나 병문안을 해본 이들은, 의료도구에서 병원냄새를 환기해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거나 겪게 될 병과 죽음, 기억과 망각에 대한 부르주아식 표현이다.

기억은 상속되지 않는다. 한 어른이 죽는 건 인류의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는 비유도 흔하다. 한 존재의 시간을 보내며 쌓은 기억과 경험은 생이 끝나면 정말 휘발되는 것일까? 인지하지 못하며 보내는 시간은 기억이 되지 않으므로 없는 일이 되는 것일까? 시간을 같이 보낸다면, 함께 한 이들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공감과 공유는 기억과 경험을 다수의 주체에게도 분산시킨다. 인지기능에 주체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억도 경험도 다르게 저장될 수 있지만, 한 시간, 한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반드시 남게 될 것이다. 과거란 기억되든 기억되지 않든 우리의 인지 범위를 넘어선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그 범위를 넘어선 어떤 것들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의 예술가들은 섬세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새삼 예술의 역할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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