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5)사려니숲에 두고 오다-최서진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5)사려니숲에 두고 오다-최서진
  • 입력 : 2024. 07.09(화) 02: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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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은 신성한 숲이라는 뜻

새벽 숲길을 걸으면 바람이 파도소리로 들린다



죽은 새들은 다 어디로 갈까

새들의 무덤은 허공일지도



잠깐 머무는 것들을 떠올린다

누군가 두고 간 울음 하나가 저 숲에 살고 있어

구불구불한 등고선이 생긴다

여기서는 바람의 말을 번역하지 않아도 좋다



나무의 호흡을 잠시 나눠 쓰는

오늘의 숙제는 간격을 이해하는 것

나무들은 서로의 간격을 침범하지 않고

나도 안 보이는 울음 하나를

내 몫으로 바위 밑에 숨겨두고 왔다



신성함에 이르는 길은 멀고

사려니, 발음하는 순간

흩어지는 바람파도

삽화=배수연



사려니숲이 생의 한복판이 될 순 없지. 그렇지만 삶의 면면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때 그 싱그러운 나무의 간격에 얼굴을 씻고, 인간의 숨 막히는 시간을 통과시키는 사려니의 이끎을 만날 수 있다. 나무의 호흡 곁에서 누군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가는 간격을 떠올리면 당신의 잎이 생겨나는데, 내 잎은 금방 떨어지려 한다. 그 간격이 산딸기처럼 익어가는 사려니숲에서 길은 젖은 원고지처럼 오래된 울음을 바위 밑에 밀어놓았다. '바람파도'로 흩어지는 거기 가시화된 과거가 구불구불한 등고선으로 이어질 때 넘어오거나 넘어오지 못하는 호흡처럼 흔들리는 시간이 있고, '사려니'로 특정된 인간속의 '신성함'은 그 경계에서 떠돌고 있으리. 사려니로 가자. 이따금 물바다가 되어버리는 인간의 마음은 이웃으로서 램프를 들고 있는 나무의 호흡을 빌려 써야 하고, 잠깐 머무는 것들 중 새들도 사려니를 떠날 때가 오지만 아직은 얼마쯤의 눈물로 당신이라는 순수는 물결치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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